[김세만의 대중음악산책] 4·19혁명과 유석애도가
1948년 7월17일 헌법이 공포되고 제헌절이 탄생했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군까지 철수한 한국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1950년 소련군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은 3·8선을 넘어?남침하였으니 한국전쟁(6·25)이 일어난 것이다. 한반도는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 조인 후?남북으로 나뉘었다.
전쟁의 폐허와 상처가 깊어 서민들의 삶은 고단한데 정치는 정파에 휘말려 더욱 불안했다. 장면 국무총리가 사임하고 국회의원 40여 명이?헌병대에 연행됐으며 폭력배의 보호 아래 개헌안이 통과되는 권력다툼 속에서 배고픈 서민들은 그저 고달팠다. 이 무렵 정부체제를 냉소적으로 풍자한 노래가 홀연히 나타나 안개처럼 나라를 덮으며 유행했으니 바로 <물방아 도는 내력>이다.
물방아 도는 내력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땅 언덕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밖에나가 기심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속을 알아 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꺽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역사 알아 보련다
작사자 손로원은 이 노래 발표 후 기관원들에 의해 수없이 불려 다녔는데 이유는 ‘벼슬도 싫고 명예도 싫다’는 내용이 현 정부에서 벼슬과 명예를 유지하려는 자들에게 ‘귀거래사’와 같은 내용으로 들렸다는 것이다.
1956년 5월15일 대통령선거일을 앞두고 5월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해공 신익희는 선거 유세차 호남선 열차로 이동하던 중 서거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의 당선을 확신하며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던 국민들이 깊은 설움에 잠겨 있던 중 한 노래가?유행하였으니?<비 내리는 호남선>이다.
비 내리는 호남선
손로원 작사, 박춘석 작곡, 손인호 노래
목이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다시못올 그날짜를 믿어야 옳으냐
속는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
죄는많은 청춘이냐 비내리는 호남선에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작사가 손로원은 이 노래가 유행하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됐고 작곡가 박춘석은 약관 26세의 나이로 공전의 대작을 만들어 작곡가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 국민들 사이에는 ‘해공선생 애도가’라 불렸으며 “해공선생 부인이 작사했다, 원래는 해공선생 부인이 노래를 부르기로 되어 있으나 목이 메어 부르지 못하였다”라는 등의 소문이 돌았고 노래와 소문이 뒤엉켜 크게 유행했다. 민주주의와 해공 신익희를 사랑하는 마음이 ‘비 내리는 호남선’을 부르면서?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1960년도?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인데 1956년 5월 대선에서 해공 서거로 민심을 잃은 자유당정권은?쌀쌀한 날씨와 조직에 의존하는 것이 자유당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선거일을 3월15일로?조정했다.
이 선거도 1956년처럼 민주주의가 꽃 피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민주당 대통령후보 유석 조병옥 박사가 선거 한 달을 남겨 놓고 2월15일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신병 치료 중 서거해 국민들이 애도했으니, 이번에는 <유석 애도가>가 유행했다.
유석 애도가
작사 미상, 작곡 김부해, 노래 박재홍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선생 뒤를 따라
장면박사 홀로두고 조박사도 떠나가네
가도가도 끝이없는 당선길은 몇굽이냐
자유당에 꽃이피네 민주당에 비가오네
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
춘삼월 십오일에 조기선거 웬말인가
천리만리 타국땅에 박사죽음 웬말인가
설움어린 신문들고 백성들이 울고있네
원래 이 노래는 일 년 전인 1959년에 반야월 작사, 김부해 작곡, 박재홍 노래로 유행한 ‘유정천리’이다. 이 노래는 그러지 않아도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아들 손을 잡고’ 등의 현실도피성 가사로 반체제 노래라는 지목을 받던 중이다. 현실체제의?불만과 애도의 내용은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중고등학생과 시민들 사이에 유정천리 곡조에 맞춰 ‘유석 애도가’로 불렸다.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일에?비민주적인 방법이 동원되면서 마산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규탄데모를 벌였다. 이어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 처참하게 떠올라 군중들은 격분했고 이 열기는 4월18일 고려대 학생들의 부정선거 무효궐기대회에 이르러 4월19일의 도화선이 됐으며 결국 자유당 정권은 퇴진했다.
민주화 바람은 이렇게 서민의 삶을 진솔하게 반영하는 대중가요와 함께 발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