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만의 대중음악산책] 처절한 민족의 함성 ‘대한독립만세’

창가(唱歌)?

1. 창가의 탄생

창가(唱-노래 부르는 행위, 歌-노래와 음악)는 특정음악분야를 지칭하는 장르적 의미가 아니고 ‘노래’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거기에는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 3국에서 창가라는 음악적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느냐는 매우 흥미로운 얘기다.

한국의 고가(古家), 중국의 고전(古典), 일본의 고요(古謠) 속에는 창가, 가곡, 가창, 창, 가요라는 말이 쓰인 기록이 뚜렷하다. 우리보다 서양음악을 먼저 받아들인 중국이나 일본에서 서양의 ‘Song’ ‘Lied’란 뜻을 한문으로 기록하면서 ‘창가’로 불리웠던 것이다. 서양음악인 찬송가는 1893년 선교사들이 보급했고 창가는 1872년 일본에서 유래한 소학교 교재 <창가독본>이 보급되면서 ‘창가’란 용어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 입교식에 찬송가와 함께 신식노래인 창가를 보급시킨 것이 서양음악의 효시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배재학당 교과서 제목에 사용한 창가가 처음인 듯하다. 이 무렵 찬송가, 교재용 노래, 신식군가, 전래민요 등 서양음악이 들어오기 전의 노래도 같이 사용해 당시 창가는 모든 노래를 지칭하였던 것 같다.

2. 새로운 창가

창가는 1894~1925년경까지 30여 년간 구전을 통하여 보급됐다. 우리 음악사에 발전을 가져온 몇 종류의 창가를 소개한다.

1896년 11월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노래를 불렀는데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 사인(Auld Lang Syne, 석별)’의 곡에 맞추어 노래했으니 이 노래가 우리나라 애국가의 기반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궁화노래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수려 동반도는 우리 본국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존하세

위 노래는 윤치호가 가사를 만들고 음악교사인 벙커(Bunnker)가 ‘로렐라이’에 얹어 독립문 정초식에 불렀다고 배재학당 80년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 노래는 ‘올드랭 사인(Auld Lang Syne, 석별)’ 악보에 수록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팝가수 지 클립스가 부른 ‘I Understand’의 배경음악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애국가

(1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대한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 남산우헤 저소나무 칠갑을 두룬듯
?????? 바람이슬 불변함은 우리기상일세

(3절) 가을하늘 공활한데 구름없이 높고
?????? 밝은달은 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 이기상과 이마음으로 충성을 다하야
?? ???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윤치호는 가사를 다듬어서 오늘날의 애국가를 완성시켰다. 훗날 안익태는 우리나라 공식 ‘애국가’로 부르는 가사를 기록한 끝마디에 윤치호 作이라 명시했으며 이 애국가는 여러 유형의 애국가 중에서도 창가의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이화학당 교가

참 영광스런 학당은 이화학당일세
사면에서 온 수백명 학생 다 지금들 노래하네
그 학생들 노래지어 날마다 화답하네
이 이름 널리 전파키 위해 다 지금들 노래하네
배리(梨) 꽃화(花) 배울학(學) 집당(堂)
이화학당 이화 이화 이화학당

이화학당 교가는 이화학당 교사 김정진이 작사하고 작자미상의 선교사가 작곡했다. 1906년 만들어진 노래가사 속에 ‘노래’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포함됐다. 이는 학교 교육에서 창가의 비중이 중요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경부철도가
최남선 詩

1. 우렁탸게 토하난 기뎍 소리에
???남대문을 등디고 ㅼㅓ나 나가서
???빨리부난 바람에 형세 갓흐니
???날개가딘 새라도 못 따르겠네

2. 늘근이와 뎖은이 셕겨 안졋고
?? 우리네와 외국인 갓티 탓스나
?? 내외틴소 다갓티 익히 디내니
?? 됴그마한 딴세상 뎔로 일웠네

3. 관왕묘와 연화봉 둘러 보난중
???어늬덧에 룡산역 다다랏도다
???새로일운 뎌다는 모두 일본집
???이텬여명 일인이 여기 산다네

4. 서관가날 경의선 예서 갈녀서
???일산수색 디나서 나려 간다오
???엽헤보난 푸른물 룡산 나루터
???경산강원 웃물배 뫼는 곳일세

5. 독서당의 페한 터됴상 하면서
???강에빗긴 쇠다리 건너 나오니
???노량딘녁 디나서 게서 부터는
???한성디경 다하고 과천 따히다

6. 호호양양 흐르난 한강 물소리
?? 아딕까디 귀속에 텨너 닛거늘
?? 어늬름에 영등포 이뤄 러서는
?? 인텬타와 부산타 서로 갈이네

7. 예서부터 인텬이 오십 여리니
?? 오류, 소사, 부평역 디나 간다네
?? 이다음에 틈을타 다시 갈타로
?? 이번에는 딕로로 부산 가려네

8. 관악산의 개인경 우러러 보고
?? 명랑성의 묵은터 발아 보면서
?? 담시동안 시흥역 거텨 가디고
?? 날개잇서 나난듯 안양 이럿네

1905년도 서울과 부산 경부철도 개통에 맞춰 32연으로 된 긴 가사 ‘경부철도가’는 육당 최남선이?지었다.?1908년경부터 불렸던 경부철도가는 조선 최초의 7ㆍ5조 노래다. 영국민요 ‘호밀밭을 걸으며(Comin Through the Ray)’ 곡조에 붙여 불렸다. 그러나 우리 조상의 얼과 슬기를 흠모하며 일본인들의 조선 진출을 경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여 1915년 조선총독부가 금지했다.

학 도 가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벽상의 괘종을 들어 보시오
한소리 두소리 가고 못오니
인생의 백년기가 주마 같도다

‘학도가’는 일본유학생들이 고국에서 방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 서울역 플랫폼에서 합창하며 부른 것이?시초다.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국민가요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애창됐다. 일본에서 작곡돼 불렸던 ‘철도창가’ 곡조를 따왔다. 북간도의 동포들이 널리 부른 독립군가의 상징처럼 된 노래이다.

거 국 가
안창호 시 / 이상준 작곡

간다간다 나는간다 너를두고 나는간다
잠시뜻을 얻었으나 까불대는 이시운이
나의등을 내밀어서 너를떠나 가게하니
일로부터 여러해를 너를보지 못할지나
그동안에 나는오직 너를위해 일할지니
나간다고 슬퍼마라 나의사랑 한반도야

안중근이 이토오 히로부미를 사살하자 일본은 후임 통감으로 육군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임명하고 고종을 퇴위시킨다. 일본 관리와 이완용 친일내각 아래 1910년 8월22일 합방이 조인되면서 조선은 일본 식민지가 됐다. 병합 직전 그해 4월 민족주의자 안창호는 중국배를 타고 망명길에 오르면서 단장의 슬픔을 한편의 시로 읊었다.

※1910년 대한제국 학부발행 <보통교육 창가집> 제1집에서 일본노래와 서양노래를 조선어로 번역한 27곡 중 3번째 ‘달’과 18번째?‘학도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달아달아 밝은달아 리태백이 노든달아
뎌기터기 뎌달속에 계수나무 백혓으니
옥독기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짓고 량친부모 뫼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량친부모 뫼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달’은 우리나라 고유의 전래민요로 창가집에 포함되기 전부터 많이 애창됐다. 일제는 ‘달’같은 조선 민요를 <보통교육 창가집>에 끼워 넣어 일본으로 동화시키려 했지만 당시?일본의 서양 음악문화는 깊게 들어오지 못했다.

학 도 가

청산속에 무친옥도 닥가야만 광채나네

낙낙장송 큰나무도 깍가야만 동량되네
공부하는 청년들아 너의직분 잊지마라
새벽달은 넘어가고 동텬조일 비최온다

‘학도가’는 한때 배우고 수련하여 독립을 쟁취하자는 의미로 해석됐으나 최남선이 일제를 찬양해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이 노래는 성경의 각권 제목을 외우는 노래로 기독교계 학교에서 불렸으며 현재까지 불리운다. 가사를 4.4음률에 맞추어 기술했다. 일제의 압력을 받아 만들어졌지만 민중은 이 노래에 만족하지 않고 처음에 불리웠던 ‘학도야 학도야 청년학도야’를 계속 불렀다 한다.

1919년 3월1일 독립운동은 서울을 중심으로 평양, 원산 등 전국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3~5월 사이 가장 격렬한 ‘독립만세’ 물결이 퍼졌다. 총독부 집계에 의하면 사망 7509명, 부상 15961명, 피검거자 46948명이었었다. 이 무렵 ‘3.1만세가’ ‘독립운동가’ ‘3월1일가’ 등의 노래가 구전으로 전파됐다. 3·1운동하면 역시 우리는 ‘유관순’을 기억할 것이다.

유 관 순
강소천 작사 / 나운영 작곡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면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하늘 그리며 숨이졌대요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면
유관순 누나를 불러봅니다.
지금도 그목소리 들릴 듯하여
푸른하늘 우러러 불러봅니다.

당시 유관순은 이화학당 학생이었으나 학교가 폐쇄돼 고향인 충남 병천(지금의 독립기념관 부근)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벌이다 투옥된다. 옥중에서 온갖 고문으로 1920년 10월12일 사망하니 그의 나이 17세였다. 그 후 조선의 잔 다르크라 불리웠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인들 마음 속에 가장 깊고 넓게 자리 잡고 있는 이 노래는 가장 짧지만 가장 크고 엄숙한 노래임에 틀림없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1919년 3월1일 우리민족의 마음속에 아침이슬처럼 알알이 맺혀 있던 삶의 서러움을 저절로 토해내게 했던 ‘대한독립만세’라는 울부짖음은 단순한 함성이 아니라 가장 아름답고도 처절한 우리민족의?노래일 것이다. 박자와 형식, 격식보다도 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목숨을 내놓고 같이 부를 수 있었다는 민족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읽을 수 있는 국민최고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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