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루브르미술관 다 빈치 ‘모나리자’ 절도범 검거 뒷얘기

<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그냥 갖고 나왔습니다.”

1911년 8월 21일, 루브르 미술관. 내내 벽에 걸려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밤새 감쪽같이 없어졌다.

신고자로부터 장소를 정확히 재확인한 경찰은 관할 경찰서에 통보했다. 경찰서에서는 그곳과 가장 가까운 지구대와 파출소에 출동을 지시했다. 근처를 순찰중인 순찰차도 보냈다.

이들은 현장 도착하자마자 아무나 들어가서 증거를 훼손치 않도록 조치했다. 폴리스 라인을 치고 수사관계자 아니면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하며 현장을 보존했다.

일련의 이와 같은 초동조치가 잘 돼야 범인을 제대로 잡는다. 경찰 교과서에 나오는 수순을 그대로 밟았다. 신고자와 증인을 확보하고 관계자들로부터 사건정황을 청취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감식요원이 현장을 감식하고 형사의 현장조사가 이어졌다.

파리경찰청에 보고해 필요한 지원도 요청했다.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라 경찰서에 수사본부도 설치했다. 초동조치(씨뿌리기)가 잘 되면 사건해결(열매맺기)이 잘 된다. 파리경찰의 경찰사료(警察史料)를 평가해 봤다. 그 결과 “사건현장에는 수사 관계자만 출입해야 한다”는 원칙이 준수된 걸 발견했다. 증거 보전을 위해서다. 과연 파리경찰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들어간다면? 범인 지문이나 증거를 밟아 소실시킨다. 새 지문이나 족적이 추가돼 필요 없는 감식업무가 증가하고 수사에 혼선이 온다. 특히 자기가 수사하는 듯 현장에 마구 들어가는 막무가내도 있다. 추리소설같은 기사를 창작하는 ‘철부지 기자’를 잘 타이른 흔적도 나왔다.

파리경찰청 베르티용(Bertillon) 감식반장도 출동해 지문을 발견했다. 먼저 전과자 대장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베르티용식 인체측정법에 의해 만든 거다. 지문도 있었다. 사진도 첨부된 파일이다. 1902년부터 만든 것으로 무려 10만개의 지문이 들어있다. 밤 새워 고생고생하며 일일이 대조했다. 그런데 일치되는 게 없었다. 호언장담하더니, 코가 납작해졌다.

두해 지난 1913년, 미술품 거래상 알프레도 게리(Alfredo Geri)에게 편지가 날라들었다. “모나리자를 갖고 있다. 사겠느냐?”고 적혀있다. 경찰에 제보했다. 형사들이 포진해 범인 Vicenzo Perrugia를 체포했다. 페인트 공이었다. 전시실에 혼자 있었다고 했다.

신문이 시작됐다.

-어떻게 훔쳐 갔어?

“뭐 작정하고 훔친 거 아닙니다.”

-그날 휴관일이었잖아?

“직원으로 근무하는 화가 친구를 만나러 갔어요.”

범인 빈센조 말문이 터졌다.

“경비원이 그냥 들여보내 줬어요. 신원 체크도 안하구요. 여기저기 구경 좀 했습니다. 모나리자 전시실과 Salon Carre에도 갔습니다. 문득 나 혼자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 그림 갖고 싶다. 유혹이 엄청 났어요. 도저히 참지 못하겠더라고요. ‘이래선 안 돼’ 하면서도 소용없었어요. 벽에서 떼어 내 직원용 계단으로 일단 나갔어요. 거기서 액자를 분해하고 그림만 둘둘 말았지요. 외투 속에 넣었어요. 그리구 그냥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그 동안 침대 밑에 보관해 두었다고 했다. 그것도 2년간이나.

“2년이면 오래 둬 둔 거잖아요. 이제 팔아도 괜찮겠지? 했지요. 잡히고 말았습니다.”

루브르미술관 ‘모나리자 도난과?회수사건’은 이렇게 싱겁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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