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의 스파이 뒷담화] 2차대전 마타하리 ‘신시아’의 남성편력

 

영화 의 한 장면

영화 <색,계>의 한 장면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1963년 12월1일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 등성이. 중세에 지은 고색창연한 성에서 쉰셋 여인이 암으로 숨을 거두었다.

편안한 임종, 반려가 곁을 지켰다. 남편 브로스(Brousse)는 1973년 전기담요 누전으로 감전돼 죽었다. 자살로 추정됐다. 둘 다 재혼. 부인은 미국인 스파이, 남편은 프랑스 나치 괴뢰 비시정부의 외교관으로 워싱턴 주재 프랑스 대사관 공보관 때 만나 정을 맺었다.

그때가 1941년, 애미 엘리자베스 베티는 31세, 브로스는 49세의 비시정부 대위였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다. 미녀 스파이와 그 스파이를 사랑한 협력자 사이였다. 위험천만(sleep on a volcano)한 관계였다. 반역죄로 체포되느냐 간통 스캔들이냐? 아슬아슬한 몇 년을 보냈다.

1944년 베티의 간첩임무는 종료되고 이듬해인 1945년 본래 남편 아서 팩 주워싱턴 영국대사관 상무관은 자살했다. 남편 자살 후 이미 내연관계였던 캡틴 찰스 브로스와 (Captain Charles Brousse)와 정식 결혼했다. 이후 부부생활 23년, 편안하고 행복했다.

첫 결혼부터 단추 잘못 꿰다

1920년 베티는 미 해병대 대령 딸로 태어났다. 쿠바 관타나모 해군기지와 미 본토 그리고 하와이 등지로 이사하면서 친구를 사귈 만하면 아빠가 전근이다.

부모는 대학 출신이었으나 딸 대학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열아홉 때 워싱턴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사교계에 데뷔시켰다.

금발에 푸른 눈의 미모에 버릴 데 없는 몸매 그리고 넘치는 지성미를 갖췄다. 말수는 적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교양의 산 증거로 외교가의 히로인으로 올라섰다.

그런데 영국 외교관 아서 팩과 얽혀 임신을 했다. 그해가 1930년. 스무살 나이에 결혼해야 했다. 신랑은 서른 아홉 살, 19세 차이였다.

궁합이 맞지 않았다. 베티는 활달한 스타일인데 반해 팩은 움직이길 싫어했다. 나이 차이도 장애물이 됐다. 젊은 여인은 밖으로 나돌았다. 스페인으로 발령 나면서 함께 갔다.

자신의 진가를 알게 되다, 섹스!

마드리드는 내전 중이었다. 베티는 집에 붙어 있지 않고 첩보세계에 뛰어들었다. 영국 정보부 요원의 안전철수를 도왔다. 적십자 구호물자를 빼돌려 프랑코 장군 캠프에 보냈다. 스릴과 재미 만점이었다. 그녀 적성에 딱 맞았다.

베티는 섹스 위력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열넷에 멋모르고 처녀성을 상실하고 스물에 얼떨결에 결혼했다. 남편 아서 팩 상무관이 폴란드로 전근한 후 바르샤바에 따라갔던 베티는 외무장관 초청 디너파티에서 장관 보좌관 조제프 벡 대령과 눈이 마주쳤다.

둘은 곧바로 교제에 들어갔다. 베티는 “나를 제대로 써먹자!”고 맘을 굳히고 베갯밑공사(pillow talk)를 적극 전개했다. 폴란드 정보의 최근 성과에 대하여 듣게 됐다. enigma(수수께끼)는 나치의 암호였다. 곧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폴란드가 첫 침공 타깃이 될 공산이 크다. 불시 기습공격에 대비하려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프랑스가 공조하고 있었다. 베티는 MI6에 정보를 제공했다. 폴란드-프랑스-영국 3국 협력체제가 구축됐다. 그런데 벡의 부인이 눈치를 챘다. 대사관에 항의해 바르샤바를 떠나야 했다,

칠레로 가는 펙을 따라갔다. 나치가 컨트롤하고 있는 나라다. 베티는 산티아고에서 영국 입장을 선전하는 문필활동을 했다. 물론 가명이었다.

스파이 대장에게 ?부름받다

영국의 서반구 첩보 책임자인 캐나다 출신의 윌리엄 스테픈슨(William Stephenson)이었다. 그는 백만장자 기업가였다. 특허로 막대한 부를 거둬들이고 있었다. 1938년 스테픈슨이 베티를 뉴욕으로 불렀다.

1897년생인 스테픈슨 부모는 낳자마자 키울 능력이 없다며 입양시켜 버렸다.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학교도 그만 두어야 했다. 어린 나이에 전신기사로 취직했다.

1917년. 열여덟 살에 조종사로 지원입대했다. 독일 전투기 12대를 격추시키고 피격 당해 적지에 추락했다. 포로수용소로 넘겨졌다 1918년 탈출했다.

대위 제대 후 귀향해 포로수용소에서 얻은 깡통따개(can opener)를 만들어 팔았다. 대성공, 큰 돈을 모아 재투자를 거듭하며 거부가 됐다.

사업 상대국의 돌아가는 사정을 알아야 했다. 독일의 군비 증강과 은닉 국방예산 첩보도 입수했다. 당시 야당의원이던 윈스턴 처질에게 제공했다. 이후에도 계속 보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40년 6월21일 처칠 수상은 그를 미국에 보내 영국정보조정관(the British Security Coordination, BSC)을 창설케 했다.

첫째 임무는 영국 수상과 미국 대통령 사이의 비밀정보 채널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공식직책은 여권관리관(the British Passport Control Officer)으로 사무실은 뉴욕 록펠러센터 3603호실에 두었다.

영국 첩보기관-MI5, MI6(SIS), SOE(Special Operation Executive), PWE(Political Warfare Executive)-의 총괄기구(umbrella organization)였다.

대서양을 오가는 항공우편도 검열했다. 영국과 미국을 오가는 비행기는 미 본토 노스캐롤라이나 동쪽 640마일 지점에 있는 Darrell섬 RAF(영국공군) 공군기지 기착 후 우편물을 하역했다.

버뮤다(Bermuda)의 프린세스 호텔로 수송 후 검열반(the British Imperial Censorship)에게 전달되면 검열관(censor) 1200명이 달라붙어 하나하나 개봉해 검열했다. 스파이 행위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마타하리 당신은 이제부터 달의 여신이야”

스파이 총책 스테픈슨은 베티에게 암호명 신시아(Cynthia)를 부여했다. 그리스 신화 달의 여신이다. 첩보업계에 정식 등판했다는 인정증서다. 베티는 대만족했다.

베티의 임무는 이탈리아와 비시정부의 프랑스군 암호 시스템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언론인으로 신분을 위장했다. 보스는 말은 안했지만 신시아 능력을 믿었다. 바로 섹스가 무기였다. 그 점이 바로 채용(recruit) 요인이었다. 워싱턴에 맨션을 마련해 놓고 부임 명령을 내렸다.

이탈리아 대사관의 무관 알베르토 라이스(Alberto Lais) 해군 제독을 만났다. 아는 사이였다. 제독은 황금의 여인(Golden Girl)을 다시 만났다며 좋아했다.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고 했다.

베티는 해군 암호 책(navy’s code book)를 입수해 1941년 3월 그리스 남단 케이프 마타판(Cape Matapan) 해전에서 이탈리아 해군을 영국 해군이 격멸시켜 지중해 제해권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보타지 계획 즉 ‘상대방을 무력하게 하려는 계획’도 탐지했다. 미국 항구에 정박 중인 이탈리아 선박이 폭파되지 않도록 방해공작을 폈다. 작전 책임자 Lais는 적대행위를 이유로 추방당했다.

이 칼럼 모두에 나오는 베티의 반려 브로스는 감전사로 죽었다. 그때 불도 났다. 그가 베티를 위해 매입한 성은 절반 이상 불에 탔다.

브로스는 죽은 부인 베티를 내내 그리워했다고 한다. 혼자 살기 힘들어 자살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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