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리댄스로 1차대전 참전국 유력인사 매혹한 ‘새벽의 눈동자’ 마타하리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최근 미국에선 중국 스파이(spy) 색출작업이 한창이다. 연방검찰은 2012년 은퇴한 전직 CIA 요원 케빈 말로리(60)를 간첩혐의로 체포했다고 22일 밝혔다. 말로리는 지난 5월 1급 국가 기밀문서를 포함해 총 3건의 문서를 중국 첩보요원에게 몰래 전달하고, 그 대가로 2만5000달러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뉴스를 접하며 떠오른 인물이 있으니 ‘마타 하리’다.
뮤지컬 <마타 하리>(Mata Hari)는 1차 세계대전 동안 활동한 실존인물인 마가레타 거트루드 젤르(1876-1917)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활약한 여자 스파이로 알려져왔다.
1차대전(1914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은 전 세계의 경제를 두 편으로 나누는 거대한 강대국 동맹끼리의 충돌이다. 즉, 한쪽 편은 대영제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의 삼국 협상을 기반으로 한 협상국이며, 다른 한편은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있는 동맹국이다.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제국주의’ 때문이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위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게 최후통첩을 내리면서 7월 위기가 시작되었고,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국제적 동맹끼리 연결되었다.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를 침공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독일군이 벨기에를 침공하면서 프랑스로 진격했으며, 이로 인해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탈리아와 불가리아는 1915년에, 루마니아는 1916년, 그리고 미국은 1917년 참전했다.
독일이 1918년 11월 11일 휴전에 합의하면서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등 4개 주요 제국이 해체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화려한 빛의 도시 파리는 점점 빛을 잃어가며 혼란에 빠진다. 피폐해진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듯 동양의 신비로운 춤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무희(舞姬) 마타하리(Mata Hari)가 유럽 전역을 매혹시키며 사교계의 유명인사가 된다.
네덜란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난 마타 하리의 본명은 마가레타 거트루드 젤르(Margaretha Geertruida Zelle)이며,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그곳에서 네덜란드 군인 장교와 결혼했지만 1901년 이혼하게 된다. 결혼에 실패한 후 파리로 와서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군인이었던 남편 따라 살았던 경력을 토대로 자바 섬에서 온 공주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며 동양식(東洋式) 춤을 선보였다. 이때 만든 ‘마타 하리’라는 이름은 인도네시아어로 ‘새벽의 눈동자’이라는 뜻이다.
마타 하리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댄서로 활약했으며, 그녀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파리의 물랑 루즈(Moulin Rouge)극장 등에서 도발적인 밸리댄스(Belly dance)를 선보이면서다. ‘밸리댄스’는 이슬람 문화권 여성들이 추는 춤으로서 ‘오리엔탈 댄스’라고도 한다. 밸리댄스는 허리와 골반을 연속적으로 비틀거나 흔들며 추는 춤으로서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관능미를 나타내고 성숙한 여인으로서 존재감과 힘을 표현한다.
그녀의 고혹적이고 관능적인 춤은 유럽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유럽 사교계의 유력 인사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매력에 빠져들었다. 마타 하리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수많은 헛소문을 뿌렸다. 이에 ‘자바의 공주’ ‘인도의 사제’ 등의 헛소문과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녀를 좋아하는 팬들의 열정은 더욱 깊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독일 베를린에 있던 마타 하리는 독일 정보기관에 2만 마르크를 받는 조건으로 포섭되어 연합군 고위 장교들을 유혹하여 군사기밀을 정탐하여 독일군에 제공했다. 영국의 정보기관이 베를린-마드리드간의 외교통신을 해독하여 마타 하리가 스파이임을 밝혀내 프랑스 경찰이 그녀를 파리에서 체포한다.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17년 10월 15일 새벽 프랑스 뱅센에서 총살당했다. 그녀의 시신을 가족들이 수습하지 않아 의학 연구용(medical study)으로 사용했다.
<뮤지컬 마타하리>에서는 전쟁의 비극 속 죽음을 불사한 마타하리와 프랑스의 젊은 공군조종사 아르망(Armand Gilot)의 사랑 이야기를 조명했다. 아르망은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면 대신 반항아적 성격을 강화하여 냉철하고 완벽한프랑스 정보부의 라두(George Ladoux) 대령과의 대립도 돋보였다. 또한 마타하리를 사이에 두고 그려내는 삼각관계도 극의 재미를 높였다.
마타 하리의 삶은 사형으로 끝났지만 그녀가 실제로 스파이였는지, 아니면 그녀가 뿌린 수많은 헛소문들 중 하나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1999년 비밀 해제된 영국의 제1차 세계대전 관련 문서에는 마타 하리가 군사 기밀을 독일에 넘기는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어떠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고 한다. 이에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마타 하리는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웠던 스파이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