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 직필] ‘부전자전’ 모델케이스···차범근-차두리, 선우휘-선우정, 리콴유-리센룽

축구선수 차두리가 은퇴했다. 그는 선수로서는 불세출의 아버지 차범근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성실히, 열심히 해왔다. 슈틸리케 감독은 국민적 찬사를 대표하여 명예로운 은퇴식을 치러주었다. 30여년 전 전방에서 차두리를 본 적이 있다. 차범근이 대대 교회에 와서 간증을 하는데 부인 오은미씨와 아들 두리를 데리고 왔다. 두리는 당시 대여섯 살의 아이여서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차범근 선수와 악수를 하는데 체격이 큰데도 가볍고 날렵한 기운이 느껴졌다. 2000년 6월 김정일과 악수할 때 유달리 무겁고 텁텁하게 느껴져, ‘상당히 많은 성인병을 가지고 있군’ 하고 직감하였던 것과 대비된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3월31일자 조선일보에 ‘한때의 잠꼬대이나 기개는 장하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이렇다. “윤병세 장관의 발언을 읽어보면 전체적으로 그 뜻을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배달되는 청구서를 ‘러브콜’로 해석하고 나아가 ‘축복’이라고 호언하는 현실에선 자만과 착각이 교차한 19세기 냄새를 느낀다” “한때의 잠꼬대에 불과하지만 기개는 장하지 아니한가(一時夢語 不亦壯乎)” “지금 한국 외교수장에게 필요한 것은 기개가 아니라 지혜, 그리고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는 겸손이다” 바로 마지막 문장이 결론인 셈이다. 가히 최치원의 토황소격문(討黃巢格文)을 읽는 것 같은 전율을 느낀다. 참으로 국민의 막힌 가슴을 단숨에 풀어주는 유쾌, 상쾌, 통쾌한 필주(筆誅)가 아닌가?

이것이 누구의 문장인가? 국제부장 선우정의 칼럼인데 그는 당대의 논객 선우휘의 아들이다. 30여년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실에서 선우휘를 본 적이 있다. 안광이 무척 강렬하였는데 그의 이름같이 빛날 휘(輝) 자체였다. 그는 월남하여 군에 들어가 대령으로 정훈차감에까지 올랐고, 1983년 <불꽃>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문인이기도 하다. 그때 조덕송 논설위원을 본 것도 기억난다. 이들은 당시 동아일보의 최석채 등과 함께 언론계의 거목이었다. 그때의 분위기는 1930년대 상해 임시정부 같았는데, 박창암 장군과 민족사학자 이유립이 <자유>지를 발간하던 사무실에서 느꼈던 숙연한 분위기도 그랬다.

역시 부전자전이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이 맞다.

축구선수 차두리가 은퇴했다. 그는 선수로서는 불세출의 아버지 차범근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성실히, 열심히 해왔다. 슈틸리케 감독은 국민적 찬사를 대표하여 명예로운 은퇴식을 치러주었다. 30여년 전 전방에서 차두리를 본 적이 있다. 차범근이 대대 교회에 와서 간증을 하는데 부인 오은미씨와 아들 두리를 데리고 왔다. 두리는 당시 대여섯 살의 아이여서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차범근 선수와 악수를 하는데 체격이 큰데도 가볍고 날렵한 기운이 느껴졌다. 2000년 6월 김정일과 악수할 때 유달리 무겁고 텁텁하게 느껴져, ‘상당히 많은 성인병을 가지고 있군’ 하고 직감하였던 것과 대비된다.

선우정, 차두리의 경우는 “과연 그 아비에 그 아들이군” 하는 것을 절감한다. 요새는 재벌들뿐이 아니고 정치인들도 자식에 승계하는 구조가 많아졌다. 부와 권력의 세습이다. 심지어 노동조합 간부도 자식에게 직장을 세습한다고 한다.

세습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리콴유가 자식에게 정권을 물려주듯이, 자신이 직접 훈육하였고, 스스로 판단하기에 자식이 그 자리에 족하다고 판단되면 이런 방법도 장점이 있다. 청의 강희-옹정-건륭이나, 중국의 등소평-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의 경우 같으면 말이다. 우리가 이런 방법을 택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면 선조의 영예와 유산을 계승하기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작풍과 성과를 계승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누가 뭐래도 한결같은 지지를 보내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바라는 바도 여기서 더 나가지 않는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평가는 쉬운 것이 아니다. 항상 ‘바르고 열심’(正勤)이어야 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