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멘토는 ‘제갈량’과 ‘마키아벨리’였다

마키아벨리(왼쪽),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운데), 제갈량(오른쪽)

마키아벨리(왼쪽),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운데), 제갈량(오른쪽) <사진=위키피디아, 뉴시스>

[아시아엔=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장, 전 <스트레이트타임스> 선임기자] 8월9일 싱가포르 독립50주년을 불과 넉달 반 남기고, 국부 리콴유 전 총리가 3월23일 별세했다. 작은 섬나라 싱가포르에 일생을 바쳤던 리 전 총리의 별세소식에 싱가포르 국민들은 슬퍼했다.

수만명이 리콴유를 추모하기 위해 국회로 모여 장대비 속에서도 “리콴유!”를 외쳤다. 하지만 리콴유는 사랑받는 정치인이라기보단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르네상스시대의 사상가 마키아벨리는 “만약 나를 두려워하는 이가 없다면 나는 의미 없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리콴유의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당시 말레이시아는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싱가포르를 차별했고, 리콴유는 강한 리더십으로 자원 하나 없는 작은 섬에서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며 살아남았다. 싱가포르 독립 기자회견에서 리콴유는 눈물을 흘리며 “국제사회는 우리에게 생존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리콴유는 이후 서방 및 아시아 주변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남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싱가포르의 독립은 유명한 중국 역사소설 <삼국지>와 비교된다. 후한시대 유비의 측근이자 뛰어난 전략가였던 제갈량은 죽는 순간에도 지략을 발휘했다. 제갈량의 시신을 마차에 실어 죽지 않은 것처럼 위장해 위나라 군대를 속인 것이다.

역사가 존 윌스는 “제갈량은 사후에도 ‘살아남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명성을 남겼다”고 평했다. 리콴유 또한 “내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누군가 나에게 해코지하려거나 무엇인가 잘못 돼가고 있다고 느끼면 나는 바로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1950년대 리콴유는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는 캠브리지대학교 법학과에서 ‘최우수성적’을 받으며 서서히 힘을 키웠다. 이후 노동조합을 이끌었던 좌파 정치인 림친시옹과 경쟁하며 거물 정치인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국이 되자, 리콴유와 림친시옹은 인민행동당(People’s action party, PAP)을 공동창당했다. 인민행동당은 ‘독립, 민주주의, 말레이시아 공산주의자가 없는 싱가포르’를 기치로 삼았다. 리콴유는 공산주의자였던 림친시옹와 종종 부딪혔고, 결국 림은 인민행동당을 탈당했다. 그후 리콴유는 림친시옹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는 영국과 말레이시아를 염두에 둔 전략이었다. 당시 영국과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다.

1962년 싱가포르안보위원회는 림친시옹을 위협인물로 삼고 림친시옹과 그의 동료들을 재판없이 감금했다. 림친시옹의 몰락으로 말레이시아 편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사회주의연합(the Barisan Sociali)은 25%, 리콴유가 이끄는 인민행동당은 71%의 지지율을 받았다. 이에 따라 리콴유는 림친시옹과의 경쟁에서 승리한다.

‘철의 정치가’ 리콴유는 의표를 찌르는 전략으로 정적 림친시옹을 물리치고 싱가포르의 국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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