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의 웰빙100세] 리콴유 사망원인 ‘폐렴’ 예방법
[아시아엔=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던 리콴유 전 총리가 91세를 일기로 별세한지 한달이 지났다. 리 전 총리는 지난 2월5일 폐렴으로 싱가포르종합병원에 입원하여 투병하다가 3월23일 오전 3시18분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김대중(1924-2009) 대통령도 폐렴으로 2009년 8월18일 서거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자 통계자료에 따르면 폐렴으로 인한 사망이 암, 뇌혈관 질환, 심혈관 질환에 이어 네번째다.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도 9.4명(2006)에서 21.4명(2013)으로 두배 이상 늘었다.
국민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폐렴은 입원질환(병원 입원하게 만드는 원인 질환) 1위로 조사됐으며, 지난 2013년 폐렴으로 입원한 환자는 30만명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노인이 폐렴에 걸리면 사망에 이를 정도로 무서운 질환이다. 또한 기존에 앓고 있던 당뇨병, 심장병 같은 만성질환이 악화되는 것도 문제이다.
노인은 대부분 폐기능과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있어 폐렴에 걸리면 병을 잘 이겨내지 못하며, 면역력이 낮은 탓에 흉막염, 패혈증, 호흡곤란 증후군 등 치명적인 합병증도 잘 생긴다. 이에 국내 폐렴 사망자의 약 90%가 60세 이상 노인이다. 특히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은 일반인보다 폐렴에 걸릴 가능성이 10배 가량 높으므로 요양원 폐렴을 주의하여야 한다.
폐렴은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의 미생물로 인한 감염으로 발생하는 폐의 염증이다. 미생물에 의한 감염성 폐렴 이외에 화학물질이나 방사선 치료 등에 의해 비감염성 폐렴이 발생할 수 있다. 폐렴은 환자의 증상 및 징후에 따라 정형적 폐렴(Typical pneumonia)과 비정형적 폐렴(Atypical pneumonia)으로 구분한다.
폐렴을 일으키는 원인균에 따라서 세균성 폐렴, 바이러스성 폐렴, 진균성 폐렴으로 분류하며, 폐렴의 원인균이 어디에서 감염되었는지에 따라 병원 외 감염 폐렴과 병원 내 감염 폐렴으로 분류한다. 또한 세균감염이 아니면서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이 발생하는 폐렴도 있다.
증상은 폐에 염증이 생겨서 폐의 기능에 장애가 생겨 발생하는 폐 증상과 신체전반에 걸친 전신증상이 나타난다. 폐 증상으로는 기침, 가래, 호흡곤란 등이 나타난다. 폐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까지 염증이 침범한 경우에는 숨 쉴 때 통증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구토, 설사 등 소화기 증상도 발생할 수 있으며, 두통, 피로감, 근육통, 관절통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진단은 의사의 진찰 소견, 임상적 경과 관찰, 흉부 엑스레이 사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그리고 세균 배양검사, 혈액검사를 통한 백혈구 수 측정, 혈청검사 등을 실시한다. 한편 아무리 검사를 하여도 폐렴을 일으킨 원인 병원균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폐렴 환자의 임상 증상은 보통 48~72시간에 일부 좋아진다. 적절한 약제로 치료를 하면 환자의 열이 2~4일 정도 지속되다가 떨어지며, 폐렴 초기에 증가된 백혈구 수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에 적절한 치료를 하면 대개 1~2주 내에 회복이 가능하지만, 어린이와 노인 환자는 회복 속도가 느린 편이다.
폐렴에 의한 합병증으로 늑막염이 생길 수 있으며, 늑막염이 심해지면 화농이 되면서 고름이 늑막 사이에 차는 농흉(膿胸)이 된다. 또한 폐렴이 심한 경우에는 뇌나 수막까지 감염증이 퍼질 수 있으며, 폐렴을 일으킨 병원균이 혈액 속으로 들어가서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항생제 오남용으로 인하여 폐렴이 점점 치료가 어려운 질환이 돼가고 있다. 즉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폐렴균이 크게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 폐렴구균의 80%는 세 종류 이상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균으로 알려졌다.
삼성서울병원 강철인 교수(감염내과)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1과 2012년 폐렴구균 보유 환자 510명 중 5명이 페니실린을 비롯한 기존의 8종 항생제에 대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국내에서 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이 가장 심한 폐렴구균이 발견돼 큰 충격을 주었다. 이들 5명의 환자 중 1명은 입원 1주일 만에 패혈증으로 사망할 정도로 병세가 빨리 악화되었다.
폐렴 예방을 위하여 폐렴구균의 예방접종을 맞아야 한다. 전국 보건소에서 65세 이상 노인에게 무료로 접종하고 있다. 또한 매년 가을에 맞는 독감 예방주사도 폐렴 예방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백신으로 폐렴을 완전히 예방하기는 어려우므로 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평소 손을 자주 씻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을 하여야 한다. 또한 흡연, 과음, 과로, 과도한 스트레스 등을 피해야 한다.
폐렴으로 사망한 리콴유 전 총리의 동갑내기 친구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3월24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세계는 리콴유를 그리워 할 것이다’(The world will miss Lee Kwan Yew)라는 제목의 추도사를 실었다. 키신저 박사는 추도사에서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가 나의 가까운 친구였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다. 혼동 속에서 질서를 찾아야 하는 지금의 세상은 그의 리더십을 그리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키신저는 “리 전 총리는 부인이 식물인간 상태가 됐을 때 매일 저녁 아내의 침상 곁에서 책을 읽어줬고, 자신의 목소리를 부인이 알아들을 거라고 확신했다”며 “아마도 이것이 리콴유가 이 시대에서 했던 역할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세상에 나타나는 증거들이 모호하다 할지라도 그것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리콴유였다.” 키신저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얻었고, 그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추모의 글을 맺었다.
“내가 죽거든 화장해 아내의 뼛가루와 합쳐 달라”는 유언을 남긴 리콴유 전 총리의 부인 콰걱추(1920-2010) 여사의 사랑은 널리 알려진 러브스토리다. 영국 유학시절 결혼한 리콴유는 자신의 부인을 ‘파트너’라 부르며 모든 일을 의논하며 싱가포르를 이끌어 갔다.
2010년 90세로 별세한 부인을 먼저 보낸 애틋함을 리콴유는 지난 5년간 자택 거실에 안치해둔 아내의 유골 항아리를 바라보면서 하루 일과를 마치곤 했다고 한다. 그는 “아내의 죽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큰 구멍을 내게 안겼다”고 고백했으며, 좋은 남편으로 많은 사람에게 귀감을 주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영국과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ㆍ분리시킨 건국의 아버지요, 보잘 것 없던 제3세계 항구도시 국가를 금융, 물류 선진국으로 탈바꿈시켜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현대국가로 변모시킨 지도자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이며,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이다. 싱가포르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넓고, 인구는 520만이다.
리콴유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 자치정부 시절부터 독립 이후 1990년까지 무려 31년간 총리를 지내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집권했으며, 현재 총리는 리콴유의 아들 리센룽(63)이다. 싱가포르는 리콴유가 1954년에 창당한 인민행동당(PAP)이 일당독재를 해왔기 때문에 헌법상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존재감을 드러낼 일이 별로 없다. 리콴유ㆍ고촉통ㆍ리셴룽 등 3명의 총리가 통치한 50년 동안 7명이 대통령직을 거쳤다. 현재 싱가포르 대통령은 토니 탄이다.
리콴유는 우리나라 박정희(1917-1979) 대통령보다 13년 더 집권했으니, 만약 그가 한국에서 집권했다면 ‘권력욕의 화신’ ‘사법제도조차 거부한 반민주 독재자’ ‘언론자유 말살자’ 등으로 비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국민들은 싱가포르가 선진일류 국가로서 쾌적하고 안전한 것은 리콴유 전 총리의 덕분이라고 인정하고 그를 독재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도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를 올바르게 평가하여 그가 이룩한 업적을 한국인 모두가 인정하여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과 리콴유 총리는 불굴의 의지와 지도력으로 경제개발 및 국가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지도자이다.
일당 독재라는 외부의 비판에 대하여 리콴유는 ‘아시아적 가치’를 이야기 했다. 종신 총리를 할 것으로 주위에서 우려했으나 그는 고촉동 총리(1990-2004년 재임)를 거쳐 현재는 아들인 리쎈룽(2004년 취임)이 총리직을 맡고 있다. 한편 그는 선임장관, 내각고문이란 직함으로 2011년(88세)까지 현역과 다름없이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리관유는 중국의 개혁개방에도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중국의 덩샤오핑(1904-1997)이 1978년 11월 싱가포르를 방문해 리콴유를 만난 뒤 개혁개방을 결심했다. 리콴유와 덩샤오핑은 중국 내 유대 민족이라 불리는 객가인(중국 북부에서 남부ㆍ동남아로 이주한 한족) 출신이다. 그는 덩샤오핑 뿐만 아니라 시진핑(1953年生)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자들의 자문 역할을 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