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50년 지배 ‘리콴유’ 총리 언론 어떻게 길들였나?
[아시아엔=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 명예회장] 총리직에 올랐던 1959년부터 세상을 떠난 2015년 3월 23일까지 싱가포르 정계를 지배했던 리콴유. 그는 자신이 꿈꿔왔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했다.
은퇴 언론인 여툰주는 1963년부터 1975년까지 12년간 ‘잉글리시 메이저 데일리’ ‘스트레이트 타임즈’와 지금은 폐간된 타블로이드지 ‘뉴 네이션’ 등에 몸담았다. 그는 저서 ‘Confessions of Lee Kuan Yew’s Simplistic Pressman’을 통해 ‘리콴유가 어떻게 언론을 길들여왔는지’에 대해 고발했다.
여툰주는 저서에서 “리콴유는 집권 초기, 언론을 활용해 그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리콴유는 기자들을 그의 정치적인 수단으로 동원했지만 언론을 존중하진 않았다. 그는 언론인이란 직업을 업신여겼다. 여툰주는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사례도 제시했다.
1972년 싱가포르 언론인 클럽의 연례 만찬에 초청받은 리콴유는 이 자리에서 기자들은 종종 행동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의사, 변호사 등 다른 전문직과 달리 기자는 엄격한 직능시험도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60년대부터 리콴유는 언론에 대해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싱가포르의 최고 권력자는 청 입 셍 기자에게 “이 기사를 보도하면 네 목을 부러뜨리겠다”고 협박한 적도 있다.
1970년대 스트레이트 타임즈의 편집장을 지냈던 T.S 쿠는 리콴유의 집무실로 소환돼 스트레이트 타임즈가 보도했던 기사와 사진을 어떤 판단에 근거해 실었는지 해명해야 했던 적이 있다. 여툰주는 쿠를 인용해 이 자리가 대화라기보단 리콴유가 언론을 질책하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이봐. 난 국가 최고권력자의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고.”
사건의 발단이 된 보도는 무엇이었을까? 스트레이트 타임즈는 총리가 세 명의 자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을 보도했다. “리콴유는 이 보도가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었던 ‘두 자녀 정책’에 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총리는 또한 여 툰 주가 당시 뉴 네이션 타블로이드 지에서 싱가포르의 동성애자들을 시리즈로 다뤘던 것에 대해서도 불쾌해 했다.”
그렇다면 리콴유가 생각하는 싱가포르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까? 리콴유는 1971년 6월 9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 총회에 참석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싱가포르 국가통합이 최우선 과제다. 언론의 자유는 그 후순위다.” 여툰주는 이에 대해 “총리는 반세기 동안 싱가포르 정치사회를 주물렀다. 언론은 그의 입맛을 따라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여툰주에 따르면 리콴유는 언론에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통제하는 것이 더 쉽다고 판단했다. 공권력에 반하는 보도를 한 신문은 정부를 뒤흔들었다는 비난과 총리의 보복에 직면해야 했다. 여는 “국민들로부터 위임 받은 선출된 지도자였다는 사실에 근거해 언론 통제를 정당화했다”고 밝혔다. 이와 반대로 싱가포르의 언론은 국가 중대사와 지도자에 대해 보도할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리콴유의 언론에 대한 적개심은 ‘싱가포르 헤럴드’ 사태로 이어졌다. 이 신문은 싱가포르 국민들이 2년에서 2년 반 동안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지니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방의 의무는 국가의 생존과 결부돼 있는 민감한 소재였지만, 이를 다뤘단 이유로 ‘싱가포르 헤럴드’는 총리의 눈밖에 나고 말았다. 여는 또한 싱가포르 정부가 중국계를 억누르고 있다고 보도한 중국어 신문 ‘난양 시앙 파우’이 탄압받은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는 리콴유가 싱가포르에서 발행되는 모든 언론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지적했다. 1984년 리콴유는 출판언론 법안을 제정하며 정부의 허가를 받은 신문만 발행될 수 있음을 법으로 명시했다. “그는 언론의 설계자이자 감독자였으며, 장의사의 역할까지 수행했다.” 여가 내린 결론이다.
“1984년,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았지만 오히려 싱가포르에선 비틀거렸던 스트레이트 타임즈에 리콴유가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그는 단 한 줄로 싱가포르에서 발행되고 있는 모든 신문들을 ‘싱가포르 프레스 홀딩스’ 산하로 만들었다. 언론의 독립성 상실, 비통하지만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보다 더 슬픈 것은 싱가포르 언론이 국민과 소통하는 ‘신뢰할만한 창구’의 자리를 소셜미디어에 내줬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