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조선일보 조갑제·양상훈 두 논객 주장에 동의 못하는 까닭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아베가 노는 꼴이란 가관이다. 저희끼리 모여앉아 “요건 요렇게, 저건 저렇게 하면 한국이 골탕 먹겠지?”하며 시시덕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편 조선일보 조갑제 고문이 ‘독도문제는 없다’고 주장했다. 독도문제가 생기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이 한국을 돕기 위해 개입해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논객의 주장으로서는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그러면 일본은 미국의 동맹이 아닌가? 미국민 가운데 일본을 지지하는 여론이 68%, 한국을 지지하는 여론 이 58%다. 김대중, 노무현 이래 미국은 ‘한국이 이럴 수가?’하는 노여움이 이처럼 대단하다. 이를 복구하려면 시간이 오래 간다. 이는 절대로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최근 독도에 방파제를 건설하려던 계획이 중단되었다. ‘독도를 지역분쟁화’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외교부의 반대 때문이다. ‘실효적 지배’라는 우리의 입장만 확고히 하고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략은 상대와 상황을 보아가면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외교청서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명시하였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그렇게 명시한다고 한다. 이것이 도발이 아니고 무엇인가? 김종필-오오히라 밀약이 되었건, 정일권-오노 밀약이 되었건, 밀약을 깨뜨린 것은 이 수작을 진행해온 일본이 먼저다.

어차피 한국과 일본의 화해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화해를 한 독일과 프랑스는 서로 주고받았다. 150여년 전 보불전쟁에서는 불란서가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그 전까지는 독일이 거의 일방적으로 당해왔고, 1.2차 대전에서도 최종적으로는 주고받았다. 그에 비해 한국은 일본에 주로 당하는 쪽이었다. 삼국시대 3국의 渡來人들이 일본에 한자 등 문화를 가르친 우월한 지위는 한때였다. 원의 일본 침공에 고려가 동원된 것 말고는, 한반도는 끊임없이 왜에 시달려 왔다. 임진왜란에는 魚肉이 되었고 드디어 20세기에는 일본의 노예가 되었다. 이 치욕은 오래 간다. 求同存異하자는 것은 이 트라우마를 잊자는 것이 아니라, 이는 명심하되, 안보협력, 경제교류는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間隙이 생기면 중국의 술책에 말려든다.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주간이 사드로 중국에 너무 서운하게 하지 말자는 칼럼을 썼다. 대강은 맞되, 사드를 마치 소련이 쿠바에 미국을 겨누는 핵미사일을 배치하던 것처럼 중국에 큰 위협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오류다. 사드는 방어용 레이다 시스템이다. 우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뿐이 아니라 백두산 근처에 배치된 중국의 IRBM에도 대비해야 한다. 전략은 意圖가 아니라 能力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한중관계가 아무리 우호협력관계라 하나, 노벨평화상 후보 엔디코트 박사가 제안한 ‘동북아 제한적 비핵지대’ 구상에 따라 중국이 한반도에서 일정 거리 밖으로 핵을 물리지 않는 한, 한국과 미국으로서 그에 대한 대비는 당연한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도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입장은 확고히 하고, 경제를 비롯한 각 부면에서 협조하는 求同存異의 지혜를 모색해나가야 한다.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북한체제 변혁에 있다는 입장에서 중국이 서방과 협조를 해나가지 않는 한, 한국과 미국의 신경은 피로하게 만들면서 무역에서 득을 보려는 ‘꿩 먹고 알 먹는’ 장사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 일본, 중국의 사이에서 고뇌할 것 없다. 이승만, 박정희에 답은 다 있다.

논객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을 구하고 정교하게 책략을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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