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에게 길을 묻다 6] 손전화로 e-북 읽는 세상을 꿈꾸다
서권기의 위기 주범 ‘손전화’
[아시아엔=안동일 칼럼니스트/동아시아 연구가] 엊그제 모처럼 남한산성 아래 우거를 벗어나 서울시내에 나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새삼 ‘서권기의 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손전화만 들여다보고 있는지. 전에는 더러 종이책을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종이책을 보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유익한 정보를 찾고 e-북으로 고전을 읽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모두들 게임을 하거나 SNS로 잡담을 하고 오락프로를 듣고 보는 것 같았다.
추사가 이 광경을 봤다면 뭐라 했을까. 그래서 나는 보란 듯이 두툼한 종이책을 꺼내 책장을 넘겼다. 추사가 제주 대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근묵자흑이라고 먹물 옆에 있으면 검게 물들게 된다지 않는가. 55세에 제주에 유배됐던 추사가 가장 열심히 했던 활동은 바로 독서다. 그의 독서 열의는 상상을 불허한다. 그의 책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집에 소장해둔 것들을 일일이 기억해내 귀양지로 보내줄 것을 아내와 동생들에게 계속해서 요구했다. 책에 대한 기억력 또한 대단해 집안 구석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책은 물론 제목이 없는 책이나 친척에게 빌려준 책까지도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흥미 있는 것은 추사가 인편에 책을 주고받는 것을 목격하고 그곳 제주 대정 사람들이 추사에게 책을 부탁했다는 사실이다. 이야말로 근묵자흑이요, 문자향의 발현 아닌가. 당시 대정현 주민들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일종의 계까지 조직했다는 기록이 있다. 워낙 책이 비쌌기에 책접(冊接)을 만들어 돈을 갹출하는 방법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접은 제주의 독특한 무형유산이라는데 필요에 따라 여러 사람이 모여 접의 취지와 규약 등을 기록한 책인 立錄(입록)을 만들고 그 규정에 따라 서로 돕거나 일을 주선하는 모임을 말한다. <사서오경> 한질 값이 대정의 땅 열 마지기(2천평)에 해당했다 하니 접이 필요할 만했다.
추사는 유배 후반부 그곳에서 서당을 열어 학동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런 추사의 영향 때문인지 이후 대정은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 임에도 똑똑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다.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 유학생이며 항일인사가 유독 많았다. 해방 직후 일어난 제주 4.3항쟁의 발원지도 대정이었고 또 항쟁 주모자 김달삼(본명 이승진, 1923년 대정 영락리 생)이 바로 대정 출신인 것도 우연은 아닌 듯싶다.
추사의 왕성한 독서는 실사구시의 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경전을 폭넓게 연구하기 위해 추구하는 박학다식의 실천이다. 추사는 성현의 도를 구현하고, 인생의 궁극을 알기 위한 방편에서 박학의 대상을 경전에 대한 풍부한 독서로 설정했던 것이다. 그는 개인적 친분으로 간곡히 당부하거나(아들, 동생, 제자들에게 쓴 편지) 논쟁하는 방법(백파선사, 조희룡과의 서신 토론)으로 주변 사람들을 가르치고 일깨웠으며 자신도 배워 나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인으로서의 면모가 아닌가 한다.
문자향과 서권기가 아무리 스스로 발현된다 하더라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그 빛과 향은 죽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독서인으로서 그의 관심은 동양 문화권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중국문화에 깊이 경도되어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조선의 문화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열망에서였다. 그리고 고생하는 민초들의 삶을 목격 체험하면서 그들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경세유표의 노력이기도 했다. 그 구체적인 탐구와 얼마간의 결실이 조선의 가장 변방 유배지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 중국 12번 왕래하며?추사에게 책 바쳐
유배생활 동안에도 왕성한 독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추사의 남다른 의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친지들 도움이 컸다. 특히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덕이 컸다. 그는 12번이나 중국에 다녀올 정도로 대표적인 역관이었다. 순조 30년 봄, 그러니까 추사가 연경에 다녀온지 꼭 20년 후, 28세에 처음 중국에 다녀온 뒤 바로 추사를 찾아가 일찍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추사가 중국과 교류할 수 있도록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서 추사는 평소 이상적을 통해 국내에 앉아서도 중국 학예계의 정보와 자료를 활용하며 국제적인 차원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이상적 역시 추사의 명성과 후광을 통해서 추사의 북경 인맥을 활용하여 단순한 역관이 아닌 문사로서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폭넓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제주에 유배된 추사는 사실상 정치적인 생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이상적은 위험을 무릅쓰고 권세를 상실한 추사에게 변치 않는 마음으로 중국의 새로운 자료들을 구해 제주도까지 보내주었다. 그 덕에 추사는 꼭 보고 싶었던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을 전해 받고 제자의 변치 않는 마음과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 ‘세한도’를 그려주었던 것이다.
추사는 자신의 소장도서 및 독서계획 서목을 만들어 독서에 활용했는데, 지금도 그 내용의 일부가 전해지고 있어 이를 통해 구체적인 독서 내용을 알 수 있다. 추사가 읽은 책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청나라 위원이 쓴 <해국도지>(海國圖志)다. 1844년 60권으로 간행되었는데 내용은 세계 각국의 지세, 산업, 인구, 정치,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서술한 것으로 개략을 저자 스스로 18개 부문으로 나누었다. 추사는 1845년에 벌써 이 책을 제주도에서 입수하고 있다. 그는 막내아우에게 보낸 편지에서 “해국도지는 요사이 좋은 소일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네. 그러나 눈 어두운 것이 이와 같아서 예전처럼 책을 읽을 수가 없으니 아쉽기 짝이 없다네”라고 쓰고 있다. 그는 이 책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책에다 베끼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추사의 열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또 권돈인에게도 “해국도지는 꼭 필요한 책이며 나에게 다른 집의 많은 보물과 맞먹는다”고 쓰고 있다. <해국도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다름 아닌 근대조선의 개화사상을 낳는 계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추사는 서양으로부터 전해진 천주교와 태양력을 반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서양의 과학기술을 탐구해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 서양의 침략에 분노하면서도 서양을 정확히 알고 그 장점을 중국에 활용하고자 했던 <해국도지>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 사회 서권기의 위기는 출판산업의 침체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고, 그 구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기라는 비명으로 여기저기서 표출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13년 출판시장 현황’을 보면, 국내 81개 주요 출판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5조5147억원으로 전년 대비 2.9%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3802억원으로 3.9% 줄었다. 특히 단행본 매출액이 2010년 이후 3년간 20.8%나 줄었다. 출판문화산업의 구조가 더욱 편중되고 문예와 학술의 기반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통계청의 ‘2013년 연간 가계동향’에 따르면, 2인 이상 전국 가구의 실질 서적 구입비는 가구당 월평균 1만6878원으로 전년도보다 5.0% 줄었다. 지난 10년간 가구당 서적 구입비는 47.1%나 줄었다. 오락문화비는 35.7% 늘었다. 2013년 전국 순수 서점수는 1625개로 10년전인 2003년에 비해 순수 서점은 622개, 문구점 겸 서점은 1258개가 사라졌다. 문예와 학술의 기반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사회, 정의와 진실을 얘기하면 왕따가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독서인 추사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희망을 찾는다. 실은 역사 속에서 철학자과 사학자들은 항상 젊은 세대가 책을 읽지 않고 신중하지 못하다고 한탄하곤 했다. 동양에서는 춘추전국시대 이래, 서양에서는 그리스시대 이래 항상 그랬다. 서양에선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스피노자와 칸트가 그랬다. 동양에서는 공맹이 그랬고 근세에서는 임어당이 한탄을 했다. 우리도 안향과 퇴계가 걱정을 했고 단재 신채호는 격분을 금치 못하겠다고까지 했다.
엊그제 지하철에서 내가 옆자리의 젊은 학생에게 보란 듯이 펼쳤던 책이 마이크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내가 갖고 있는 그 책은 98쇄. 지금은 190쇄까지 나왔고 200쇄를 향해 간단다.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는 한국 사회에서 ‘정의’를 주제로 한 철학책이 200쇄를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사실이다.
책을 읽는 것은 습관의 형성을 통한 성과이지만 책을 사는 것 또한 습관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오래된 진실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