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 타고 ‘아시아 항해’ 나서다
<인터뷰> 윤명철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
5월 필리핀-한국 2,000km 뗏목 탐험·· “아시아는 하나의 문명공동체”
‘뗏목을 타고 항해를 한다? 필리핀에서 한국까지? 뗏목이라 말은 했지만 진짜 뗏목은 아니겠지.’ 그런 의문을 품고 6일 뗏목 탐험가 윤명철(59) 교수를 만나러 동국대 연구실로 찾아갔다.
“정말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시나요?” “그럼요. 이거 보이시죠? 이게 축소한 모형입니다. 이런 배를 타고 항해합니다.” 마른 몸매의 윤 교수는 대나무로 만든 20cm 크기의 뗏목을 보여주며 “뗏목이 일반 배보다 장거리 항해에는 안전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뗏목은 전복되지 않습니다. 바다와 하나가 돼 물결 따라 움직일 따름이죠. 태풍이 불면 심하게 기울기는 하겠지만 줄로 몸을 고정시키면 됩니다.”
뗏목, 바다와 밀착돼 전복되지 않아
무슨 이유로 뗏목을 타고 그 먼 거리를 항해하는 것일까. 한국 해양사 전문가인 윤 교수는 “뗏목 퍼포먼스를 통해 아시아인 공동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조화와 상생의 문명 모색, 우리의 우수한 해양력 홍보, 한민족과 동남아시아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뗏목의 이름이?’3, 동아문명호(東亞文明號)’입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본질적으로 하나의 문명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3이란 숫자는 인간, 바다, 뗏목의 삼위일체를 뜻합니다. 3은 조화와 상생의 숫자이기도 하죠. 우리 민족이 지향했던 사상이 숫자 3안에 있습니다. 또 이번 탐험은 동남아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해양 경로를 입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요.”
이번 탐험에 사용될 뗏목의 크기는 세로 15m, 가로 6m.?세 개의 돛으로 움직인다. 항해거리는 직선거리 2,000km, 실제 거리는 4,000km를 예상한다. 5월초 필리핀 라오악을 떠나 대만, 오끼나와, 제주를 경유, 6월 중순경 여수에 도착한다.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평균 시속 2Km로 간다면 예상 기간은 50일. 바람이 도와주면 30~40일 만에 여수에 올 수 있다. 배에는 조그마한 선실을 만들어 잠을 자고 장비를 보관한다. 항해 중 대만과 일본 요나쿠니에서 2박3일간 머물며 배 등을 손 보고 제주도에서는 학술세미나도 가질 예정이다.
윤 교수의 뗏목 탐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3년 대한 해협, 1996년 황해문화 학술탐사(16일간 중국 절강성~산동성 적산), 1997년 황해문화 학술탐사2(24일간 절강성 주산군도~인천), 2003년?뗏목 탐험(43일간 중국 절강성-인천-제주도-일본) 등 몇 번의 경험이 있다.
그는 뗏목탐험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동아시아의 해상루트를 밝혀냈다. 전인미답의 동아시아 해양사라는 분야를 새롭게 개척했다. 윤 교수가 제시한 학설이 ‘동아시아 지중해’ 설이다. 황해, 남중국해 일대가 고대 동아시아의 지중해 역할을 했고, 이를 중심으로 한국, 중국, 일본 등 고대 국가들이 활발한 교역을 펼쳤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한민족 형성사까지 알게 됐다.
“아시아 여러 문명의 종착점이 한국입니다. 그 유입과정을 직접 걷고?뗏목 탐험을 통해?확인했고요.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문화 국가입니다. 한민족이 배타적이라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에요. 어떻게 보면 한국을 비롯한 전 아시아인이 많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 하나의 문명 공동체로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뗏목이 말하는 느림의 가치···”바다 위에서 대자연이 되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배 뗏목. 윤 교수가 뗏목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또 다른 것은 느림의 가치이다. 돛에 의지하는 뗏목은 1시간에 평균 2km를 간다. 사람이 걷는 것보다 느리다. 천천히 가는 뗏목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자고, 먹고, 배설하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것 외 낮에는 망망대해, 밤에는 컴컴한 하늘의 별을 보는 일이 전부다. 자연스럽게 개개인을 깊은 사유로 이끈다.
“별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주 편안해집니다. 대양의 끝에서 마지막 붉은 빛을 토하는 석양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 한가운데서 두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으면 우주에 나 홀로 있는 것 같은 절대고독에 휩싸이고요. 바다와 나, 대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막한 바다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는?생사의 갈림길이기도?하다. 윤교수는 항해를 하다보면 보통 두 번 정도 극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때 기분은 어떨까.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한번 무섭다고 생각하면 공포가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밝은 생각을 해야죠. 탐험은 인간의 한계상황을 깨트리는 행위입니다. 한계상황을 극복하면 통쾌한 자유가 밀려듭니다. 극한 상황에서야 비로서 대자연의 실체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때 인간은 진실해지고 진실해질 때 자연과의 합일이 이뤄지지 않나 싶습니다.”
목숨 거는 ‘해안 접안’···운도 따라야
그가 말하는?정말 위험한 상황은 해안에 접안할 때다. 뗏목은 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해안가 여기저기에 암초가 널려 있는 상황에서 파도가 밀려오면 뗏목은 나아갈 수 없다. 날씨가 좋지 않아 파도가 몰아치는 날 해안가에 뗏목을 접안시키는 일은 목숨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몇 해 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울릉도 근해를 거쳐 일본 오키 제도에 도착할 예정이던 뗏목 ‘발해 1300호’가 조난당해 대원 모두가 죽은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죠. 추측하건데 아마 발해 1300호는 일본 오키 제도 해안에 접안하려다가 전복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만큼 위험해 고도의 기술과 경험 그리고 운이 따라야 합니다.”
항해 과정 여수세계엑스포 특별방송 통해 전파
이번 탐험은 세계여수엑스포 기간에 이뤄진다. 한국의 해양역사와 여수엑스포 개최 사실을 세계에 알리는 것도 이번 탐험의 작은 목표다. 윤 교수팀은 항해 상황을 인터넷으로 알릴 계획이다. 엑스포 기간에 KBS를 통해 매주 2회 이상 항해 과정이 전파를 탄다.
이번에 함께하는 대원은 모두 5명. 윤 교수와 몇 번 뗏목탐험을 한 바 있는 안동주 한국해양문화연구소 연구원, 최윤수·박정빈 동국대 동굴탐험부 대장 등이다. 동석했던 최윤수 대원에게 두렵지 않냐고 물었더니 “기대되고 흥분된다”며 빨리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뗏목을 만드는 비용부터 50일간의 식량, 구명장비, 위치탐지기, 통신장비 등을 비롯한 전자 장비 등에 소요되는 비용은 6억원. 동국대와 일부 독지가들이 약간의 후원은 했으나 대부분은 자비다. 엑스포와 KBS에서도 특별한 지원은 없다. 떠나기 전까지 윤 교수가 해결해야 될 과제다.
“기획력이 약해서 그런지 스폰서 찾기가 쉽지 않네요.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지만 지원을 못 받아도 할 수 없죠.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남은 한 달 동안 체력훈련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윤명철 교수는?역사학자겸 탐험가이면서?시도 쓴다.?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로 한국해양문화연구소장, 한민족학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역사는 진보하는가’, ‘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 ‘역사전쟁’, ‘장수왕 장보고 그들에게 길을 묻다’, ‘윤명철 해양논문선집’ 등 4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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