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권자 그리고 조선족 살인사건
4·11 총선 날 찾아간 안산 다문화거리
19대 국회의원 선거날인 4월11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안산을 찾았다. 이주외국인들의 선거날?풍경이 궁금했다.?이번 19대 총선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외국인은?10 만 여 명. 그 중 안산에 5000여 명의 외국인 유권자가 있다.
19대 총선?국적 취득?유권자 10만명
오전 11시40분 경 다문화거리에서 가까운 원곡동 주민센터 투표소에 도착했다. 비도 그치고 날이 따뜻해 활동하기 좋은 날씨다. 투표소 관리관에게 외국인 투표자 수를 물었더니 “10명이 다녀갔다”고 전했다.
혹시 투표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다문화거리로 들어섰다. 중국동포들이 이주외국인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중국 음식점과 상점들이 주를 이뤘다. 비자 갱신 업무 등을 대행해 주는 가게가 눈에 띄어 들어갔다. 하지만 모두 상담에 열중하고 있어 말을 걸지도 못하고 조선족 신문만 챙겨서 나왔다. ‘중국조선문보’와 ‘흑룡강신문’. 중국조선문보 4월6일자 1면에 ‘중국동포 최대관심후보’라는 제목으로 4명의 후보 사진을 실었다. 2면에는 동포 밀집지역인 금천구, 영등포구, 구로구, 광진구 후보들의 사진을 게재했다. 국회의원 선거가 중국 동포들에게도 큰 관심사로 보였다.
가게를 나와 음식점 거리로 들어섰다. 임시공휴일이라 관광객들까지 몰려 사람들로 북적인다. 길거리에는 오리알, 중국식 꽈배기, 닭 심장, 두리안, 개다리, 중국식 순대, 양꼬치 등 이국적 음식으로 가득하다. 한 중국식 다과점에 들어가 인도 난 같은 널찍한 밀떡을 사며 여점원에게 “혹시 유권자신가요” 물었더니 못 알아 듣는 표정이다. “국회의원?선거 날인데 투표 하셨냐고요? 아, 아니요. 저는 조선족이에요.“
점심 무렵인 1시. 공원 옆에서 닭 날개 꼬치와 소세지 구이를 파는 태국 청년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 온 지 5년 된 대학생이었다. 주말이나 쉬는 날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최근 한 언론에서?이곳 다문화거리가 범죄의 온상처럼 보도돼 실제 노점상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했다. “아무 문제 없어요. 경찰이 얼마나 자주 순찰을 하는지 몰라. 공원에 경찰이 상주하고 있기도 하고요. 여기 좋아요.” 닭날개 구이 1,500원. 소시지 2,000원. 3,000원에 둘 다 먹고 싶다 했더니 순순히 오케이.
이국적 음식의 향연이 펼쳐지다
요기를 간단히 하고 40대 남자 약사가 홀로 앉아 있는 한 약국으로 들어가 아는 외국인 유권자기 있는지 물어봤다. “옆 슈퍼마켓 여주인이 조선족인데 아마 유권자일거에요. 거기를 가 보세요.”
손님이 없어 태국 청년에게 했던 질문을 넌지시 던졌다. 그는 이곳에서 약국을 한 지 20년이 됐는데 위험하단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어디든 범죄는 발생하죠. 여기는 외국인 유동인구도 꽤 많은 곳이고요. 상대적으로 외국인이 많다보니 안산이 자주 등장하지만 통계로 보면 범죄 발생 빈도는 더 낮을 수도 있죠. 요즘은 치안이 강화되면서 더 좋아졌고요.” 실제 안산 지역의 외국인 범죄율은 높지 않다.
나올 무렵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약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진통제와 소화제를 많이 찾아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많이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먹는 것도 불규칙적이고.”
약사가 알려준 슈퍼마켓에 들어갔지만, 한국인 남편 밖에 없다
다문화거리에 음식점만큼이나 많은 상점이 핸드폰 매장이다. 먹고, 관계(대화)를 맺고자 하는 욕구는 기본 중 기본. 역시 여기서도 유권자는 만나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여점원에게 국회의원 선거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더니 오늘이 투표하는 날인 줄도 몰랐단다. 이곳에선 선거가 정말 먼?나라 이야기다.?여성이?느끼기에 동네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했다.?”밤에는 좀 무서워요. 공원에 술 취한 사람도 많고.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자가 다니기엔 좀 겁날 때가 있어요.”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폰은 뭘까. “갤럭시 노트를 가장 많이 찾아요.” 요금제는 무제한 요금제를 선호한다고 했다.
동포사회 조선족 살인사건으로 혐오분위기 확산 우려
핸드폰 매장을 나와 공원에 들어섰다. 삼삼오오 모여 카드놀이, 제기차기, 장기 두기?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풍경마저 이국적이다. 홀로 따뜻한 봄 햇살을 즐기는 한창호(59)씨에게 다가갔다. 한국에 온지 10년 된 연변 출신 동포다. 유권자는 아니었다. 현재 반월공단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조선족 살인사건에 대한 중국동포들의 분위기를 물었다. “끔찍한 일이죠. 남의 나라 와서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 중국동포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였다. “조선족도 똑같은 사람이에요. 중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바로 사형인데 한국은 사형이 없어서 그런 것도 같고요. 폐 끼치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동포들도 참 많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선량한 동포들을 위해서라도?입국심사 강화,?보다 철저한 치안대책은 필요해 보인다.
한 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해 투표도 하고 싶지만 제도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자녀들은 한국 사람을 만나 모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 씨는 그나마 회사의 배려로 10년 동안 취업비자로 한국에 머물 수 있었다며 만족해 했다. 그는 “현재 내 주변의 중국동포 60% 이상이 50대”라며 “그들 대부분이 한국 국적을 받아 한국에서 여생을 마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표자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는 길. 공원에서 중국동포로 보이는 술취한 한 40대 남성이 연장자로 보이는 한 남성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주변의 만류로 금방 사태는 진정됐다.?단순 다툼일 수 있지만 이런?일이?공공장소에서 자주 벌어지는?원인은 뭘까,?생각했다. 10일자 한국일보 사설의 한 대목. “조선족이 저지르는 범죄의 이면에는 우리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임금 착취와 인간 차별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부터 돌아볼 일이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 외국인 선거권은
공직선거법 제15조에 따르면 19세 이상 국민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다. 국민이라 함은 해당 지역구 안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을 뜻한다. 다문화 가족 여성 등 외국인이 귀화해 일정한 거주지를 갖고 주민등록이 돼 있다면 투표할 수 있다.
만약 외국인이 귀화하지 않고 영주권을 획득해 국내에 머물고 있다면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권이 없다. 다만, 체류 기간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영주의 체류자격 취득일 후 3년이 지나고, 지방자치단체의 외국인등록대장에 올라 있는 외국인은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의원·장의 선거권이 주어진다. 이런 이유로 총선, 대선보다 지자체 유권자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