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언론의 핵심은 신뢰, 무엇을 믿게 할 것인가

    AI 생성 이미지 * 이 기사는 아시아엔 다국어판 플랫폼을 통해 공유됩니다. [아시아엔=리븐 드수자 ‘더 타임스’ 쿠웨이트 편집장] 매일 오후 3시 30분, 쿠웨이트의 라디오 청취자들은 주파수를 99.7에 맞춰놓고 익숙한 리듬을 즐긴다. 청취자들은 부담 없는 음악과 소소한 일상을 들으면서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질문이 떠올랐다. “정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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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일동 칼럼] 한국 문화의 근본 코드…’삼신’과 ‘원방각’ 문명

    각박한 저 가운데(中, 土)에서 해(日)와 달(月)의 기운으로 밝게(明) 각(角)을 세우고 서있는 도봉산 솔낭구들 <사진 배일동> 한국문화 문명의 핵심 코드는 삼분화(三分化)에 있으며, 그것이 바로 삼신사상(三神思想)이다. 삼신사상은 해와 달과 지구, 곧 땅(土)을 뜻한다. 이를 우리는 예로부터 천지인 삼재라고 불러왔다. 또 천지인의 표상을 원방각(圓方角, ㅇㅁ△)이라고 했다. 해와 달의 원과 방이 지구의 흙에서 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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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서권 칼럼] 유월의 밤, 사망을 끊고 생명을 여신 하나님

    유월절 <AI 생성 이미지> 430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는 유월의 밤입니다. 티끌에 거하던 우리들이 빛나는 이슬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일어나는 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가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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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자가 이후, 스승의 부재 속에서 제자들은 비로소 믿음에 이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성목요일 미사 뒤의 성당은 깊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십자가는 자색 천으로 덮여 있었고, 성가정의 성상은 붉은 천 아래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감실은 열려 있었으나 텅 비어 있었고, 성체조배실은 전날 세족례에 참여한 어린이의 손끝 실수로 문까지 잠겨 있었다. 그 안에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충만함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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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지는 세상에서 꽃으로 사는 법

    자목련은 우리 집 안마당에서 유난히 늦게 피는 꽃이다. 지금 그 자목련이 한창이다. 나는 그 짙은 자줏빛이 좋다. 글 사진 이병철 저마다 서로에게 꽃이 되어 환한 미소로 마주할 수 있다면, 항상 꽃이 피는 듯이(常如花開之形) 온 사방에 봄꽃들이 화려함을 다투며 눈부시게 피어나고 있다. 그 꽃들과 마주할 때마다 문득, 나는 어떤 자태와 향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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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4·3’과 ‘사북’…46년의 기다림, 정선에서 묻는 국가의 사과

    1980사북 오늘 4·3 78주년, 제주에서 사북까지…국가폭력의 기억과 정선에서의 물음 [아시아엔=황인욱  저자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 <사북항쟁과 국가폭력> 저자] 올해는 제주 4·3사건 78주년이다. 78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를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권력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우리는 그 기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나는 지금 강원도 정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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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라도 앞의 예수, 그 앞에 선 나…분모를 내려놓는 사순절의 고백

    빌라도 앞에선 예수, 지오반니 바티스타 작 사순절이 끝나갈 무렵이면, 나는 늘 한 장면 앞에 멈춰 서게 된다. 빌라도 앞에 선 예수이다. 세상의 힘과 계산이 소용돌이치는 그 자리에서 예수는 자신을 과장하지도, 변명하지도 않는다. 오직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왔다고 말할 뿐이다. 그분이 대제사장의 질문 앞에서 “Ego eimi(나는 그다)”라고 고백하던 순간의 맑은 울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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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리앗’ 무찌른 ‘다윗’의 10년 뒤 고백

    시편 23편 *잠깐묵상 | 사무엘상 21장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사무엘상 21:8상) 불과 10년 전,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외쳤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은 골리앗의 칼과 창이 두렵지도 부럽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의 칼과 창을 무력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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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장일치 유죄의 함정…성목요일이 드러낸 ‘재판 아닌 폭력’

    ‘빌라도 법정에 선 예수’ 미하이 문카치 작 성목요일 저녁, 예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눈 뒤 겟세마네로 향했다. 그날 밤 그는 체포됐고, 몇 시간 뒤 새벽녘 ‘재판’을 받았으며, 이른 아침 로마 총독 앞에 서서 십자가형이 확정됐다. 단 하룻밤 사이에 체포와 심문, 판결과 집행이 이어진 이 비정상적인 속도는 단순한 종교적 사건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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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라도의 ‘예수 재판’이 던지는 질문…“손을 씻겠는가, 아니면 눈을 뜨겠는가?”

    빌라도가 물을 떠서 손을 씻은 것은, 사실 자신의 양심을 씻어내기 위한 의식이었다. 2천 년 전의 이 장면은 오늘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내가 지나온 병원, 군의관들이 있는 현장, 회의실과 브리핑룸에서도 사람들은 가끔 “내가 한 결정이 아니다”, “규정이 그렇다”, “상부의 지침이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내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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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난주간] 부활은 상처에서 시작된다…토마스의 고백 ‘나의 주님’

    카라바조의 대표작 ‘성 토마스의 의심'(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1~1602). 이 작품은 토마스가 실제로 예수의 옆구리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확인하는 순간을 극적으로 포착한 그림으로, 빛과 어둠의 대비(키아로스쿠로)와 인물의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 특히 토마스의 손과 시선, 예수의 상처를 중심으로 구성된 장면은 ‘믿음 이전의 확인’이라는 인간적 태도와, 그 이후 도달하는 신앙의 고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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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문섭 칼럼] 나르시시즘의 치료

    눈에 보이는 부모 말에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애당초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순종은 놀라운 ‘기회’가 됩니다. 내가 알지 못하던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뜰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상관의 지시에 순종하면 어느새 조직과 업무를 보는 상관의 관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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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난주간]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갈 것인가?

    주기도문-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BASIC CHURCH 권명철 목사의 열두 줄 묵상마태복음 27:1-26,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빌라도는 비겁하게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난 2천년간 온 인류의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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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건 칼럼] 부활은 소란이 아니라 질서였다…수술실에서 떠올린 성 주간

    나는 그 옷을 정갈하게 접어 로커 맨 윗칸에 올려둔다.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건드리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와 그 옷을 입을 수 있도록. 금방까지 내 체온이 남아 있는 옷은 새로 꺼낸 뻣뻣한 수술복보다 훨씬 부드럽다. 그렇게 옷을 곱게 접어 올려놓는 짧은 순간, 나는 종종 그 구절을 떠올린다. “그 머리를 쌌던 수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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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건 칼럼] 돌아온다는 약속, 그리고 새로워진 삶…’성주간'(聖週間)에 외과의사가 묵상한 부활

    렘브란트 작 <엠마오에서의 식사>(유화, 1648).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는 바로 그 순간을 옮겼다. 사람은 떠난다. 그리고 돌아오기를 약속한다. 그 약속은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신앙 속에서 반복된다. “나는 돌아오리라 (I shall return).”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이 1942년 필리핀을 떠나며 남긴 이 말은 단순한 군사적 선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패배 속에서 던진 약속이자, 시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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