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칼럼

병상에서도 끝내 시를 놓지 않았던 참스승 김창수를 기억하며

스승의날을 맞아 지난 1월 23일 세상을 떠난 교사이자 시인 김창수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시집 한 권이 내 책상 곁에 놓여 있다. 김창수의 유고 시집 <당신 앞에서는-병상의 노래>(문학들, 2025년 7월 29일)이다. 오랜 병상 생활 속에서 써 내려간 삶과 고통,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록이다.

김창수는 단순한 시인이 아니었다. 광주고와 서울대 서양사학과,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거쳐 교육 현장에 뛰어든 그는 중앙고교 역사 교사로 출발해 전북 무주 푸른꿈고등학교, 담양 한빛고등학교, 광주 지혜학교 등 대안학교 설립과 운영에 헌신했다. 입시 중심 교육을 넘어 삶의 의미와 공동체, 생태적 감수성을 가르치는 교육을 고민했던 교육운동가였다.

그의 활동은 교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녹색연합과 빛고을생협, 녹색대학교 등 생태·환경운동 현장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참교육과 참살이의 길을 함께 모색했다. 교육에세이 <지혜를 찾는 교육>, <선생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시집 <꽃은 어디에서나 피고> 등은 그가 평생 붙들었던 질문의 흔적들이다.

김창수 김희숙 선생님 부부

그러나 그의 삶 뒤에는 35년에 걸친 병마와의 싸움이 있었다. 서른세 살에 급성간염 진단을 받은 뒤 간이식과 심장판막 수술, 뇌출혈, 혈액암까지 이어진 긴 투병의 시간 속에서도 그는 교육과 사회운동의 현장을 쉽게 떠나지 않았다.

그의 유고 시집은 광주전남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여수요양병원, 화순전남대병원 등을 오가며 기록한 시편들을 엮은 것이다. 제1부 ‘당신 앞에서는’부터 제6부 ‘누구의 죄입니까?’까지, 각 부마다 병상과 요양병원에서의 체험과 사유가 담겨 있다. 죽음의 문턱을 오가면서도 그는 끝내 삶의 의미를 놓지 않으려 했다.

표제시 ‘당신 앞에서는’은 “시방 내가 누워 있는 것은 병상인가 칠성판인가”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병상이 곧 죽음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삶을 붙드는 공간임을 처연하게 드러낸다. 또 “자식 죽음 앞에서도 밥은 넘어가고, 중환자실 산소호흡기 아래서도 시가 익는다”는 대목에서는 인간 존재의 끈질긴 생명력과 시인의 내면이 읽힌다.

‘앰뷸런스 소회’에서는 아내의 기도 소리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알려주는 순간을 담았고, ‘수술 후에 드리는 기도’에서는 자신의 고통을 넘어 더 아픈 이웃을 위한 기도를 남겼다. 병상의 기록이지만 단순한 투병기가 아니라 삶과 죽음, 인간과 연민에 대한 깊은 시학으로 다가온다.

사진 왼쪽부터 김이레 막내딸, 부인 김희숙 선생님, 김창수 시인, 김인우 둘째 아들 <사진 이상기>

김창수는 ‘시인의 말’에서 “투병 중이거나 그 길을 지나온 이들, 병약한 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함께 공감하고 위로받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그의 시는 병을 이겨낸 승리의 기록이라기보다 끝내 사람을 향한 마음을 놓지 않으려 했던 한 교사의 마지막 수업에 가깝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지인 한면희 전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봄이 오면 나무마다 수액이 오르고 꽃이 화사하게 핀다”며 “김창수가 살아생전 앞장서 해온 일들을 우리 사회가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기자는 역시 지난해 9월 20일 광주 풍암동 광주다일교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만난 김창수 시인의 해맑은 모습을 잊지 못한다. 오랜 병마 속에서도 그는 사람들을 향해 먼저 웃었고, 끝까지 교육과 생명의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평생 교육 현장을 함께 걸어온 아내 김희숙 동화작가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삶을 가르치려 했고, 병상에서는 끝내 인간의 존엄을 놓지 않으려 했던 사람. 그래서 스승의날에 다시 그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병상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시인의 기록과 한길 제자 사랑의 참교육 정신이,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작은 위로로 남기를 바란다.

2025년 9월 20일 출판기념회에서 김창수 시인이 부인 김희숙 동화작가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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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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