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황건 칼럼] 영안실과 수장고 사이에서…인간의 몸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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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길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젖은 신발을 벗고 조용히 의자에 앉으니, 마치 긴 순례를 마치고 작은 기도실 앞에 돌아온 사람 같다.

지난 5월 21일 아침 아침 나는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스승을 배웅하였다. 장지에 매장하는 대신, 당신이 근무하였던 해부실습실 냉동고로 향하는 마지막 길이었다. 나는 추도사를 읽는 대신 ‘스승의 은혜’를 불렀고, 만해의 ‘사랑의 측량’을 외우고, 찬송가 ‘주 날개 밑’을 불렀다. 미망인과 딸은 눈물을 흘렸고, 나는 울음을 삼킨 채 끝까지 노래를 마쳤다.

그 길로 빗속을 다섯 시간 달려 부산에서 열린 체질인류학회에 갔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대구의 한 해부학 교수는 1946년 대구 10·1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서 일어난 노동자·학생 시위와 유혈 충돌은 이후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그 과정에서 대구의전 학생들이 해부실습용 시신을 메고 시위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칠곡호국평화박물관에서 나는 또 다른 기억의 문 앞에 서게 되었다. 학예사는 나를 수장고 입구 옆의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벽마다 책장이 가득했고, 가운데에는 오래된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한 권의 책을 꺼내 보여주었다. 나는 그 책 속에서 한 세대 이상 앞선 의대생들이 시신을 앞세워 거리로 나섰다는 기록을 읽었다. 그들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식민지의 상처와 가난 속에서 젊은 이상주의는 얼마나 눈부셨겠는가.

그러나 인간의 몸에 대한 경외마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순간, 이상은 스스로를 상처 입힌다. 어제 나는 자신의 몸을 의학교육에 남긴 스승을 배웅하였다. 오늘 나는 시신이 투쟁의 상징이 되었던 기록 앞에 오래 머물렀다.

혁명과 전쟁은 때때로 죽은 몸을 깃발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의학은 그 몸을 다시 한 인간으로 돌려놓으려 애쓴다. 해부실습실의 묵념과 조심스러운 절개, 그리고 추모식은 어쩌면 그 오래된 다짐의 흔적일 것이다.

죽은 몸은 말이 없다. 그래서 산 사람들은 더욱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나는 오늘 만난 사람들과 책들, 그리고 기억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인간의 몸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창밖에는 내리던 비가 그치고, 궂었던 날씨도 조금씩 걷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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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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