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회

신포 KEDO 현장이 남긴 34.5%의 교훈…트럼프-김정은 대화, 같은 실패 반복 말아야

북한 함경남도 신포 인근 금호지구의 KEDO 경수로 건설현장. 남측 기술자와 근로자들이 참여한 이 사업은 1997년 착공해 2003년 중단됐으며, 당시 전체 사업 진척도는 34.5%였다. 사진은 2002년 당시 공사현장.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 함경남도 신포 금호지구에서 추진된 KEDO 경수로 건설사업에는 많은 남측 기술자와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당시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였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로 바뀌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시 김정은 위원장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남북 긴장 완화와 대화 재개를 모색하고 있다. 이 글은 당시 신포 현장에서 북한 관계자·근로자들과 직접 부딪치며 일했던 홍인기(69)씨의 기억을 통해, 김정일 시대의 신포 경험이 오늘의 트럼프-김정은 대화와 남북관계에 무엇을 말해주는지 되짚어본 회고다. <편집자주>

20여 년 전 나는 북한 함경남도 신포 인근 금호지구에서 일했다. 북한 땅에 한국형 원자력발전소를 짓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경수로 건설현장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희한한 시절이었다. 남과 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북한 땅에서는 남측 기술자와 근로자들이 북한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거대한 발전소를 짓고 있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1000MW급 경수로 2기를 제공하기로 하면서 시작된 사업이었다. 1997년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고 2002년에는 원자로 건물의 첫 콘크리트까지 부었다.

당시 우리에게 그것은 국제정치의 거창한 실험이라기보다 매일 출근하고 사람을 만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생활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북한을 책이나 뉴스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 보았다.

북한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북한 사람들은 우리를 ‘선생’으로 불렀고 그들은 서로를 ‘동무’라고 불렀다. 나이가 많은 사람 가운데는 남쪽에 대해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젊은 사람들은 달랐다. 오랜 교육과 체제 속에서 형성된 생각의 벽이 얼마나 단단한지 느낄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사람과 사람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웃기도 하고 농담도 했다. 필요한 것을 몰래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 경계하면서도 조금씩 상대방의 생활을 들여다보게 됐다.

나는 그때 북한 사회의 일상도 조금씩 알게 됐다. 특히 노동과 교육, 개인시간을 엄격하게 나누는 생활방식은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공사 일정 때문에 연장근무나 야간작업을 요구하면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몇 시간 더 일하는 문제였지만 그들에게는 교육시간과 생활체계 전체에 걸린 문제였다.

임금협상도 쉽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계약과 그들이 받아들이는 계약에는 차이가 있었다. 북한이 늘 강조하던 ‘자력갱생’이라는 말도 신포에서는 구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들과 실제로 협상해보면 알 수 있다. 북한과 합의한다는 것은 문서 한 장에 서명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한 가지 가능성도 보았다. 정치적으로는 적대하는 남과 북의 사람들이었지만 매일 같은 공사장에서 만나 일을 하다 보면 결국 상대방도 먹고 자고 가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포에는 분명 그런 시간이 있었다.

북한 함경남도 신포 인근 금호지구 KEDO 경수로 건설현장에서 원자로 건물의 기초·하부 구조물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원형 구조물 주위로 철근이 촘촘하게 배근돼 있고 대형 크레인이 투입돼 있다. KEDO 경수로 사업은 1997년 착공했으나 북핵 위기가 다시 불거지면서 2003년 중단됐다. 사진은 원자로 건물의 기초·하부 구조물 공사 장면

34.5%에서 멈춘 공사, 그리고 철수

하지만 정치가 현장을 덮쳤다. 2002년 북핵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경수로 사업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KEDO는 2003년 공사를 중단했다. 당시 종합 공정률은 34.5%였다. 공사를 중단했다고 곧바로 모든 사람이 떠난 것도 아니다. 이미 건설한 시설과 반입한 장비가 엄청났기 때문에 한동안 유지·관리 작업이 계속됐다. 그러나 사업은 살아나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쌓아놓은 것들을 제대로 거두지도 못하고 나왔다. 차량과 크레인, 각종 건설장비와 시설이 북한에 남았다. 수년간 사람과 돈과 기술을 쏟아부은 사업이 그렇게 끝났다. 돌이켜보면 정상적인 사업의 종료라기보다 도망치듯 철수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나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북한과 국제사회가 약속했고, 한국과 미국과 일본이 참여했으며, 수많은 사람이 실제로 북한 땅에서 공사를 했다. 원자로 건물에 콘크리트까지 부었다. 그런데 국제정세가 뒤집히자 모든 것이 멈췄다.

그래서 나는 신포를 단순히 ‘실패한 경수로 사업’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실제로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은 분명 성과였다. 북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협상방식을 현장에서 경험한 것도 값진 자산이었다.

반면 정치적 합의가 무너지면 현장에서 쌓은 신뢰와 막대한 비용이 얼마나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는지도 똑똑히 보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국방위원장

다시 남북대화를 시작하려면 신포부터 돌아봐야 한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북미대화 이야기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고, 한국 정부 역시 남북 긴장을 낮추고 대화의 문을 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나는 대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전쟁보다 대화가 낫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북한 핵문제를 결국 협상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나는 신포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한 가지는 꼭 말하고 싶다.

다시 협상하려면 과거에 왜 실패했는지부터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 정상들이 만나 악수하고 멋진 합의문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은 어떻게 협상하는가. 합의를 서로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는가. 실무 단계에서 어떤 문제가 반복되는가. 정치 상황이 바뀌어도 합의를 지속시킬 장치는 있는가. 한국과 미국의 정권이 바뀌었을 때도 약속을 이어갈 수 있는가.

신포 경수로는 이런 질문에 대한 거대한 사례집이다. 1994년 합의에서 1997년 착공, 2002년 첫 콘크리트 타설, 2003년 공사 중단, 그리고 마지막 철수까지 전 과정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잘된 것은 무엇이고 잘못된 것은 무엇인지, 북한의 책임은 무엇이고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관련국의 판단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그런 작업 없이 다시 정상회담부터 추진한다면 국민에게 잠시 기대를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과 없이 또다시 무너지면 남는 것은 더 깊어진 불신뿐이다. 한번 실패한 협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실패의 이유를 배우지 않은 채 같은 협상을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북한 전문가도 외교관도 아니다. 다만 20여 년 전 신포에서 북한 사람들과 함께 일했고, 북한과 협상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봤으며, 거대한 공사가 멈추고 우리가 그곳을 떠나는 과정까지 지켜본 사람이다.

그래서 요즘 다시 남북대화와 북미회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신포가 떠오른다. 그곳에서 우리는 가능성도 보았고 한계도 보았다. 사람은 만날 수 있었고 함께 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합의를 지속시키는 일은 발전소를 짓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신포의 원자로는 34.5%에서 멈췄다. 그 숫자를 실패의 기록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북한과 다시 대화하려 한다면 그 34.5% 속에 들어 있는 성공과 실패, 신뢰와 불신, 협상과 파기의 경험을 먼저 꺼내봐야 한다.

북한과 다시 만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에, 신포에서 무엇을 놓쳤는지부터 제대로 기억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회담이 또 한 번의 사진과 선언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리 이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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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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