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⑧ ‘산 넘고 물 건너 길 만든’ 중국

“모택동은 산, 주은래는 물, 등소평은 길”

중국 국무원 안에 민족사무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50여 중국 내 소수민족 사업을 관장하는 기구다. 책임자인 주임은 장관급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조선족인 이덕수(李德洙) 씨가 주임을 맡았었다. 그가 민족사무위 주임직을 내려놓고 얼마 뒤 고향인 연길(延吉)을 찾았다. 이 주임은 일찍이 연변자치주 주장(州長)을 지낸 바 있다. 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 주임이 “모택동은 산, 주은래는 물이며 등소평은 길”이라는 말을 불쑥 꺼냈다. 아주 절묘하고 적절한 비유라는 것이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세 사람을 하나의 괄호 안에 묶어 넣음으로써 중국 현대사의 의미를 압축시켜 조명해본다는 것은 중국인들에겐 아주 재미있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조선족이지만 중국의 고위관료며 당료인 그로서는 당연하게 내세우고 싶은 말임에 틀림없을 터이리라.

이덕수 씨보다 더 고위직인 조선족으로 조남기(趙起南) 장군이 있다. 그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조선족 사회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출중한 인물이다. 한족(漢族)으로 태어났더라면 더 고위직, 정치국원 내지 상임위원까지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안타깝게 여긴다.

그는 20대 초년에 펑더화이(彭德懷) 사령관 밑에서 한국어 통역관으로 6·25전쟁에 참여했다. 그의 곁엔 마오안잉(毛岸英)이라는 러시아어 통역관이 있었다. 마오쩌둥 주석의 장남인 안잉은 미군의 폭격으로 전사하고 그의 무덤도 북한 땅에 묻혀 있다. 마오쩌둥은 자기 아들의 시신을 나라 안으로 들이지 않고 다른 병사와 함께 이국땅에 묻히게 한다. 원자바오(溫家寶)가 총리일 적에 함경북도 외성군에 있는 중국인 병사묘역에 있는 마오안잉 묘를 참배하기도 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에 있는 ‘적군 묘지’에 중공군 유해 425기도 묻혀 있다. 비석들은 모두 북쪽을 향해 있다.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 방중 시 중공군 병사들의 묘지 이관이 논의된 데 이어 올 봄에는 유해 운구가 완료된다는 소식이다. 처음 박근혜 대통령이 이 문제를 거론하자 중국 측은 전혀 뜻밖의 소식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긴 한국 땅에 적군인 중공군 장병 시신이 묻혀있다니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적군 묘지 앞에서’라는 구상(具常) 시인의 시가 있다.

어제까지 너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를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손에 닿을 듯한 봄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 놓아 버린다.

재작년인가 중국군 참전 유가족들이 북한 땅의 묘역을 방문, 오열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6·25참전 군인이라면 17세 소년병일지라도 이제 죽어서 나이가 80이 넘었다. 25세 청년이었다면 90을 넘긴 나이다. 이제 중국 고향땅에 그들 유해를 반겨줄 가족이 얼마나 될까. 이미 부모들이야 100세를 넘길 나이일 터이고, 살아있을 리가 없으리라. 다만 자식이나 조카나 손자들이 남아서 반겨준다면 그나마 다행이 아니겠는가.

펑더화이 사령관 밑에 부사령관 겸 후근 사령관이 홍쉐즈(洪學智)였다. 그 역시 문화혁명 때 실각해 고생을 했다. 홍 사령관 아래서 조남기 장군이 성장했다. 중공군 후근부의 맥을 이은 것이다. 정치협상회의 부주석(부총리급)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그는 조선족으로 자기 위치에 오른 것은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의 산물이라고 겸손해했다. 앞으론 문화예술 분야에 특출한 민족능력을 살려서 조선족의 위상을 올려야 한다는 말도 했다.

2002년 2월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 책이 나왔다. 나는 이 책에서 “모택동이 산이라면 주은래는 물이고, 등소평은 길이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길을 만든 것이 오늘의 중국이다”라는 말을 처음으로 했다. 그리고 2006년 6월, 베이징 인민출판사에서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의 중국어 번역판 <追尋毛澤東的革命軌迹>이 출판되었다. 나는 이 중국어 번역판을 조선족 어린이일간지인 <조선족 아동보사(兒童報社)> 사장이자 저명한 아동문학가인 한석연 씨를 통해서 이덕수 민족사무위원회 주임에게 증정했다. 2006년은 마침 마오쩌둥의 30주기(週忌)가 되는 해여서 중국에서 마오쩌둥 추모 붐이 일던 시기였다.

연길 교외 모아산장(冒兒山莊)에서 이덕수 주임과 앞의 중국어판에 나오는 ‘毛是山 周是水 鄧是路’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새롭다.

이 말은 중국 고위층 인사들이 특히 좋아한다. 이젠 한국에서도 거의 보편화돼 있다. 연전엔 이원복 교수가 연재만화 <중국이야기>에서 이 말을 인용했고, 최근에는 김한규 21세기 한·중교류협회장이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마오쩌둥이 산이라면 저우언라이는 물이요, 덩샤오핑은 길이요”라는 말을 해서 반가웠다.

중국군 유해 송환은 새삼스럽게 6·25전쟁의 비극성을 환기시킨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이제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되었다. 한국은 중국을 더 많이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특히 중국 현대사에 정통하지 않으면 한·중 관계는 자칫 겉돌 수 있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을 우리가 깊게 이해하려는 것도 오늘의 중국 공산당을 똑바로 알기 위해서이고, 중국 공산당의 내일을 내다보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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