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⑦ 중국, 태산 위 마천루 올랐나

지난 12월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오른쪽)이 중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이날 바이든 부통령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에 대해 미국 정부가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시 주석은 CADIZ도 중국의 핵심이익이라고 역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신화사>

방공식별구역 일방적 선포…미국과 새 판 짜자는 속내

“중국 외교가 세계 규칙의 추종자(追從者)에서 세계 규칙의 제정자(制定者)로 변하고 있다” 참 대단한 발언이다. 중국다운 발상이다. 2012년 12월 중국 공산당 정치국 제3차 전체학습회의에서 총서기 시진핑이 한 말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시진핑은 미국, 중국 관계를 마천루(摩天樓)에 빗댔다. 두 나라만이 하늘 꼭대기에 올라있다는 말이다. 자기들끼리 바둑판을 새로 짜자는 얘기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교시가 엊그제 같은데 30년 사이 중국은 엄청 변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중국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장쩌민의 ‘유소작위(有所作爲)’, 후진타오의 ‘화평굴기(和平?起)’도 알고 보면 시진핑의 ‘주동작위(主動作爲)’로 가는 프로세스일 따름. 속마음을 감추고 시간을 벌기 위한 중국 특유의 내숭이자 역(逆)모션이었다.

덩샤오핑은 ‘도광양회’를 내세우며 앞으로 100년 간은 미국과 다투지 말라는 말도 했다. 이 말에도 배경과 내력이 있을 것이다. 죽음을 여섯 달 앞두고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다음과 같은 제사(題詞)를 썼다. 마지막 제사이니만큼 유언이나 다름없다.

심알동(深?洞) 굴을 깊이 파고
광적량(廣積糧) 먹을거리를 비축하며
불칭패(不稱覇) 패왕을 자처하지 말라

1975년 여름 병상에서 쓴 글이다. 저우언라이는 암에 시달리며 장칭(江靑) 등 사인방(四人幇)과 절체절명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10년을 끈 문화혁명은 저우언라이에게 지옥이자 고해(苦海)였다. 그러나 그는 이 지옥과 고해 속에서 공산 중국 현대사에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외교적 성과를 일궈냈다. 중미(中美) 수교의 물꼬를 튼 것이다.

그는 병상(病床)에서 아내 덩잉차오(鄧潁超)에게 격정을 토하기도 했다.
“어찌해 나라가 이 지경까지 온 건가? 건국 26년인데 6억 인구가 아직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공산당 노래만 하고 지도자 찬양만 하고 있으니, 이건 분명 공산당 실패의 한 장(章)이다.”

“정치투쟁은 끝도 안 보인다. 이렇게 나간다면 나라는 재난에 빠질 것이다. 이것도 사회주의라 할 수 있나? 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라 할 수 있나? 나의 일생은 아직도 서생(書生)의 티를 벗지 못했구나.”

이러한 저우언라이의 자탄(自嘆)과 비탄을 덩잉차오는 일기에 적었다. 이 일기가 제한적으로나마 공개된 것도 저우언라이가 죽고 한참 뒤의 일이다.

저우언라이의 마지막 제사는 그런 정황 속에서 우러나왔다. 나라를 위한 그의 마지막 당부였다. 간절함에 있어서 절규나 다름없는 이 말은 그의 절친이자 동지요 후배였던 덩샤오핑에 의해 잘 지켜져 왔다. 낮은 자세의 포복, 백성의 먹거리 마련을 위한 과감한 경제개방 정책 등은 오늘의 중국을 일군 핵심 가치다.

2006년 가을 후진타오가 두보(杜甫)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그것도 미국 워싱턴 한복판에서.

會當凌絶頂 언젠가 기어코 정상에 올라서면
一覽衆山小 산 아래 작은 산들 내려다보이리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설정으로 인해 동북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P-3C 오리온 정찰기가 중일 영토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사진=AP>

태산을 노래한 ‘망악(望嶽)’의 마지막 구절이다.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어쩐 일인지 미국은 외교적 실수를 거듭했다. 부시 대통령은 후진타오의 국빈방문 요청을 거절했고, 환영행사 때 타이완 국가(國歌)를 중국 국가로 잘못 연주하기도 했다. ‘의도된 실수’라는 말도 있었지만 결례치곤 대단한 결례였다. 이러한 수모를 꾹 참고 있던 후진타오는 오찬 연설을 하면서 두보의 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태산은 중국의 상징적인 산이다. 맨 마지막 한 구절은 맹자의 “태산에 오르니 천하의 뭇 산이 모두 작아 보이더라”는 말을 시화한 것이다. 머잖아 세계의 마천루에 오를 날을 후진타오는 미리 내다본 걸까. 불과 7년 뒤, 그의 후임자는 중국이 태산보다 더 높은 마천루에 올라있다고 스스로 자랑하고 나섰다.

지난해 11월23일 중국은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이어도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도 포함되었다. 동북아시아가 들끓었다. 불과 한 달 전인 10월24~25일 ‘주변국 외교 좌담회’를 통해 ‘친성혜용(親誠惠容)’을 내세웠던 시진핑이었다. 당 정치국원, 국무위원과 외교 라인 인사들이 모인 주요 모임에서 시진핑은 ‘친하게, 성의껏, 더불어, 포용하는’ 주변국 외교를 내세웠지만 바로 한 달 뒤 방공식별구역이 선포된 것이다.

한 해가 새로 시작된다. 80년 전, 중국 마오쩌둥의 시 한 수부터 읽어보자.

寧化, 淸流, 歸化, 영화, 청류, 귀화 땅
路隘林深苔滑. 오솔길, 깊은 숲에 이끼마저 미끄럽구나
今日向何方, 오늘 어디로 가려느냐
直指武夷山下. 바로 무이산 아래지
山下山下, 산 아래, 아래
風展紅旗如畵. 휘날리는 붉은 깃발 그림 같구나

1930년 공산 게릴라 주(朱德)마오(毛澤東)부대는 가파른 푸젠(福建)성 산골짜기를 누비며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군대와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실제로는 국민당 군의 막강한 화력과 병력에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는 간고한 신세였다.

해가 바뀌면 새롭게 자신을 향해 묻기 마련이다. 어디로 가려느냐?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 하느냐? 한국은 어디로? 한반도는 또 어느 방향으로? 우리 개개인들의 목표와 지향은? 이런 것들을 스스로 묻고 답하는 날이 정월 초하루, 원단이다.

1930년 정월, 쫓기는 공산 게릴라 마오쩌둥은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겨우 확보한 작은 거점 무이산 자락으로 숨어들고자 했다. 그 무이산 자락이 80년 뒤, 놀랄 만큼 커졌다. 몸서리칠 정도로 높아졌다. “한국, 금일향하방(今日向何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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