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牛墒) 장기표…연꽃처럼 맑고 향기롭고 따스한 ‘사랑 실천가’

“선생은 특정 이념이나 사상의 틀로 묶거나 가둘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선생에게 숱하게 새로운 조직이나 정당을 만들게 한 것이고 그것이 제도권 진입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었다.”

2024년 6월 장기표 선생이 부인 조무하씨와 1박2일 남도 거제도 나들이 중 금계국 꽃이 만발한 가운데 포즈를 취했다. 그의 8순 기념 여행이었다. 한달 후 암판정을 받아 마지막 나들이가 되고 말았다. 장기표 선생은 금계국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그렇게 기뻐했다고 동행했던 여류 이병철 필자가 전했다. <사진 이병철>

자신과 세상의 변혁을 위한 걸음을 한시도 멈춘 적이 없었던 영원한 혁명가 장기표선생이 떠나셨다.

선생의 호 우상(牛墒)처럼 독재의 가시덩굴 거칠던 묵정밭을 혼신으로 갈아 민주화의 꽃을 피우고 신문명과 자아실현의 세상을 위한 씨앗을 뿌렸던 사람, 우리 시대의 진정한 민주운동가였고 참사람이셨던 영원한 재야 장기표선생이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시대의 어둠을 밝히던 큰 등불이 그렇게 꺼졌다. 

장기표 선생 영정. 오른쪽 국민훈장은 고인 별세 후 추서된 것이다.

시대의 양심이자 참사람이 떠난 뒤에 남은 우리의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앞에 어둠이 더 짙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생명과 생태와 우애에 기반한 신문명사회와 자아실현의 행복한 나라를 꿈꾸었던 사람, 그래서 제도권 정치 진입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실패했고 그래서 옳았던 사람, 그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선생은 내가 아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민주운동가였고 자아실현과 참사랑의 새  세상을 향한 영원한 혁명가이자 한시도 그 꿈을 놓은 적이 없는 꿈 꾸는 영원한 청년이었다.

영원한 청년 장기표 선생. 지난 6월 남도 여행 중 찍은 것이다. <사진 이병철>

그랬다.

자신을 불태워 노동운동, 아니 참사람의 길을 열었던 저 전태일을 심장에 묻고 품은 이래로 그는 영원한 청년 전태일과 함께 그렇게 한 생을 살았다. 민주화 투쟁을 무슨 훈장처럼, 상품처럼, 특권인 양 행세했을 때 그는 오히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아야 했던 서민들에게 부끄러워했다. 선생은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이자 마지막 남은 지사요, 선비였다.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삶이란 곧 선생의 삶을 일컫는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누가 장기표의 사상과 이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선생과 평생을 동지로 살아왔던 한 후배가 그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도, 모택동주의자도, 또 다른 어떤 이념주의자도 아니고 오직 장기표주의자라고 답했다.

그랬다. 선생은 한평생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신의 길만을 걸어갔다. 선생은 특정 이념이나 사상의 틀로 묶거나 가둘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선생에게 숱하게 새로운 조직이나 정당을 만들게 한 것이고 그것이 제도권 진입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가장 오랫동안 투옥과 도피를 반복하는 숱한 고난 속에서도 선생은 증오와 적개심의 길이 아니라 언제나 사랑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선생의 길은 요기싸르(yogssar)와 사드비프라(Sadvipra), 내면의 평화와 사회적 변혁을 동시에 추구한 진정한 영성적 지도자의 길이었다.

선생이 사회변혁을 위한 단순한 원론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가로막는 세력과 정면으로 싸우면서도 남다른 도덕적 청렴함과 자기 수련을 통해 끊임없이 깨어있는 수행자의 모습을 잊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선생이 투신하고 헌신해 온 것은 단순한 민주화의 실현이나 노동자와 기층민중의 해방만이 아니었다.

선생이 이 나라와 지구촌 인류의 나아가야 할 길로 생태와 생명과 우애에 기반한 신문명사회를 새롭게 제시하면서 인간의 행복을 돈의 소유가 아닌 자아실현의 길임을 역설한 것은 이런 까닭이었다.

평생 사랑의 길을 열고 실천한 장기표 선생 빈소에서 부인 조무하씨(왼쪽)와 두 딸(하원, 보원) 내외 

그것이 사랑의 길이었다.

선생은 누구보다 투쟁의 원칙에 충실하고 철저했지만 동시에 그 모든 지향점을  그렇게 사랑에 두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장기표주의(主義)는 사랑이다’라고 설파한 것이다. 

민중 위에, 시민 위에 군림하고 행세하는 권력자들, 오만하고 무능한 대통령과 범법자들과 양아치들이 정치판을 소굴로 둥지 틀고 오히려 진보와 민주와 정의를 내세우며 후안무치로 설쳐대는 현 정치 상황을 우려하며 선생은 저들의 특권을 폐지하는 일을 당신의 마지막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국회의원과 법관들과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의 특권을 폐지하여 서민 대중과 더불어 우애와 배려로 직분과 역할을 존중하는 그런 세상을 위해 투신하다 이번 생을 마감하신 것 또한 사랑에 바탕한 세상을 꿈꾸었던 선생이 외면할 수 없었던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와 우리 사회에 민주화가 실현되고 서민 대중의 권익이 향상되었다면 거기엔 이를 위한 선생의 오랜 투쟁과 헌신도 함께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시대가 그렇게 선생에게 부채를 졌기 때문이다.

거제도 해금강 옆에서 장기표 조무하 부부 <사진 이병철>

우리는 선생을 보내지 않았지만, 선생은 그렇게 떠나셨다. 그는 갔지만 나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는 어느 시인의 싯구가 가슴을 더욱 아리게 하지만, 선생답게 한 점 미련 없이 잘 가셨다.

나에겐 운동판의 선배와 동지로, 그리고 누구보다 자상하고 친근했던 형님이셨던 분. 선생이 그렇게 떠나셨다. 벌써 형의 모습이, 그 눈빛과 그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이제 우리 곁에 그런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누가 또 다른 전태일, 또 다른 장기표의 역할을 이어갈 것인가.

이제 유난했던 폭염도 물러가고 하늘빛도 맑아졌으나 오늘 밤에는 새롭게 뜬 큰 별 하나가 우리를 밝게 비출 지도 모르겠다.

진흙물 속에서 피어났어도 거기에 물드지 않는 처염상정의 연꽃 같이 맑고 향기로웠던 사람, 우상 장기표선생의 영원한 평화와 명복을 빈다. <글 사진 이병철>

우상(牛墒), 진흙물 속에서 피어났어도 거기에 물드지 않는 처염상정의 연꽃 같이 맑고 향기로웠던 사람, 장기표선생의 영원한 평화와 명복을 빈다.

저세상에서 길이 평안하소서.

2024년 9월 23일 우상 선생을 보내는 빈소에서

아우 여류 이병철 모심

인생 선배이자 영원한 동지 장기표 선생에 마지막 인사를 하는 여류 이병철 필자(앞줄 왼쪽 모자 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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