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민주화운동가’ 장기표씨 별세, 누가 실천으로 계승할까?”…국회의원 특권폐지 앞장

장기표 선생

재야 운동권 대부…전태일 분신 계기 민주화·노동운동 투신
제도권 정치 입문엔 실패…만년 국회의원 특권폐지 앞장
 

인터뷰 중인 장기표
만년에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 특권폐지운동에 앞장선 고인. 

 

[아시아엔=연합뉴스 박형빈 기자]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기표 원장은 담낭암 투병 끝에 이날 오전 1시 35분께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지난 7월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담낭암 말기에 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당혹스럽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한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여러 어려운 사정에서도 물심양면의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갑자기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하다”고 썼다.

1945년 경남 밀양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1970년 11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하면서 1995년 졸업했다.

장기표 석방
1988년 12월 21일 공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된 당시 민통련 정책실장 장기표씨가 그의 부인 조무하씨(왼쪽 두번째)와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장기표씨 오른쪽)를 감싸안고 있다 

 

숱한 수감·도망 생활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체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9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 전태일 사후에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만나 시신을 인수하고 서울대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데 앞장섰다. 이후 전태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조영래 변호사에게 전달해 <전태일 평전>의 밑거름 역할을 했고, 2009년에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다.

고인은 이소선 여사와는 한동안 도봉구 쌍문동 같은 동네에 살며 노동운동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소선 여사는 세상을 떠나던 2011년 “기표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진실하고 바르게 살려는 첫 사람이자 나에게는 영원한 스승이었다”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장기표씨는 공주교도소 삭방 직후 약식 환영회에서 “이번 석방은 선별기만적인 조치”라며 양심수전원석방을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1980년대부터 재야운동의 핵심 세력으로 떠오른 그는 1984년 10월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종교인, 변호사, 퇴직 언론인 등이 참여하는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를 창립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국민회의와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의 통합을 이끌어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을 창립했다.

1990년에는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노무현과 장기표[연합뉴스 자료사진]
2002년 7월 22일 당시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영등포을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해 장기표 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장기표 원장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 선거, 이어 17·19·21대까지 7차례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현재 보수정당(현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 옮겨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국민의힘을 탈당해 특권폐지당 창당을 추진하던 중 원외 정당 가락당에 합류해 가락특권폐지당으로 22대 총선에 후보를 냈으나, 원내 입성에 실패하고, 세 차례 대선에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한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했음에도 결국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태일 열사 동상에 묵념하는 국민의힘 윤석열-장기표 대선 경선 예비후보
2021년 9월 3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장기표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청계천 버들다리(전태일다리) 전태일 열사 동상을 찾아 묵념하고 있다. 

그는 또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폐지운동 등에 집중해왔다. 지난해부터는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며 국회의원의 면책·불체포특권 폐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장기표 원장은 2023년 1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일생의 목표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이루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자아실현을 통해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잠재된 소질과 취향을 실현해야 사람은 행복해진다”면서 “사회적으로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이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딸 하원, 보원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차려졌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 발인 26일, 장지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다.

민통련 현판 제막식 참석한 장기표 원장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선 장기표 원장. 2024년 6월 7일 오후 1980년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실이 있었던 서울 중구 장충동 분도빌딩(옛 분도회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7주년 기념 민통련 현판 제막식에서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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