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칼럼] ‘단디’ 최영훈과 조오현 큰스님
작년 가을 그가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힐 때만 해도 혹시 도중에 접을까 하여 걱정이 됐다. 30년 인연으로 봐서 그럴 리는 없지만, 청장년 33년을 오로지 신문쟁이로 살아낸 그가 험하디 험한 정치판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글을 준비하며 부산 중구·영도구에 출사표를 던진 최영훈 외우와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 봤다.
최영훈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몇 개 있다. ‘약속 지킴이’ ‘술’ ‘사람 좋아함’ ‘오현스님’ ‘부지런함’ ‘꾸준함’ 등이다. 각각 사례를 들어본다.
2003년 9월 13일 오전 8시40분께 미국 워싱턴 국무부 청사 앞에서 당시 한국기자협회 미국방문단 일행은 최영훈 기협 수석부회장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9시 국무부 대변인 등과 면담 약속시간은 다가오는데 최영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8시55분 그가 도착했다. 단장이던 나와 일행 9명은 안도했고, “역시 최영훈!”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날 그는 “내일 아침 국무부 앞으로 곧바로 갈 테니 걱정마시라”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는 전날 밤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선배댁을 찾아 아침까지 통음하느라 그리됐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해 초 그에게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동아일보 사내에선 “동아일보 기자가 어떻게 한겨레 회장 밑에서 부회장을 하느냐”고 말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을 전해들은 나는 그에게 “잘 됐네. 수석부회장을 맡으면 되겠네” 했다. 그는 수석부회장이 아니더라도 그냥 할 작정이었다고 했다. ‘의리의 최영훈’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최영훈 하면 ‘술’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워낙 술을 좋아한다. 자연 술자리에서 말도 많아진다. 그런데, 그가 술자리에서 주사를 부리거나 누굴 험담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선거운동에 정신 없을 요즘도 그가 술을 마시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을 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이다. 사람 좋아하는 그가, 연말연시 그 많은 약속과 모임에서 술을 절제하고 있었다. 역시 “최영훈답다”. 그가 22대 국회에 진출하면 단주 혹은 적어도 극절제 하면서 국민들과 나라의 미래만 내다보며 실천해 나가길 빈다.
최영훈은 사람을 ‘참말로’ 좋아한다. 그는 뭣보다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재단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 보니 그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사람들은 그를 마당발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가 원칙이나 기준 없이 사람들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수년째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들의 특권 내려놓기 운동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장기표 신문명운동 대표 곁을 지키고 있다.
지난 달 최영훈 새책 <왜 사람인가!> 북토크에 참석했던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2002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와 동아일보 기자로 정착하는데, 최 선배가 너무도 알뜰살뜰 챙겨줬다”고 했다.
그가 사람 사귀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것은 마치 아이들처럼 순수하다. 계산이 없다. 맘이 통하면 첫만남 자리에서 바로 형 아우가 된다. 마음이 맑은 그와 함께 있으면 절로 기분이 밝아진다.
최영훈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다. 2018년 5월 입적하신 백담사 회주 조오현 큰스님과의 인연이다. 나와 최영훈은 2018년 3월 1일 동안거 해제일 백담사로 큰스님을 함께 찾아갔다. 그리고 석달 후 큰스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다. 스님 2주기와 3주기에 최 국장과 나는 속초 신흥사를 함께 오가며 큰스님을 기렸다.
지금 생각하면 최 국장이 입에 달고 다니는 ‘단디합시다’가 바로 큰스님한테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닌가 싶다. 큰스님은 언젠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상기는 진보정론지 한겨레 출신이지만, 보수도 함께 껴안아야 해. 사회에서 기자들을 존중해주는 까닭이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오.” 최영훈 국장과 조오현 큰스님의 일맥상통하는 점이 아닌가, 나는 종종 생각한다.
최영훈은 5년 전 퇴직 후 각계 선배, 후학들과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잠시 미루고 글쓰기에 집중했다. 날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020년 상반기께부터 새벽마다 그가 쓴 글이 내 카톡에 떴다. 최영훈의 경남고교 선배인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편가르기와 포퓰리즘 등을 비판하는 글이 종종 들어왔다. 사실 고교 직계선배인 대통령을 비판하려면 여간한 용기 없인 어려웠을 터다. 나는 개인적인 인연이나 이해관계를 넘어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최영훈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봤다. 그의 이번 총선 출마도 그 무렵 심중에서 깊이 싹트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올해 ‘지공거사’ 반열에 오르는 최영훈이 너무 늦게 정치에 나선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 이들을 몇 봤다.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했다. 흔한 말로 캘린더 나이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나이(心齡)다. 그는 30년 전 처음 만났을 때나, 요즘이나 청년의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거기에다 누구보다 ‘평생기자’로 다양하고 심층적인 경험을 축적해왔다.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최영훈 같은 후보가 4.10 총선에서 대거 선택받길 바란다. 국민들을 수시로 무시하고 바보 취급하며 어제 한 말 오늘 바꾸기 여반장인 그들, 자기(들) 이익만 챙기는 그들을 더 이상 안봤으면…역대급 ‘니편 내편’ 갈등과 대립 메이커, 정상배들로 가득차 있는 정치판을 맑게 하는데 최영훈 같은 맑은 물이 목련 꽃 피는 4월에 3천리 방방곡곡 흘러넘치면 좋겠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분들과 최영훈 외우에게 아래 말을 선사하고 싶다. “내가 볼 때 ‘바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삶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데릭 시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