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상(牛墒) 장기표형의 평전을 쓰면 좋겠다”
우상(牛墒) 장기표형이 입원한 항암전문병원에서 면회를 했다. 건강에 대한 자신 또한 누구보다 강했던 형의 병 문안을 한다는 것이 낯설면서도 나이듦과 함께 건강에 대한 자신감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다시 든다.
지난 7월말, 산티아고의 짧은 순례를 떠나기 전에 형에게 치료와 휴양을 겸할 수 있는 항암전문 한방병원을 소개해 드렸다. 내가 믿을 수 있는 병원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8월 중순,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연락했더니 그 병원에는 가지않고 집에서 요양 중이라고 했다. 멀리 가서 지낼 형편도 안 되고 그냥 집에 있으면서 필요한 방편을 찾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인연이 아닌 모양이라는 생각과 우상형의 그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장기표 형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복수가 차서 도저히 입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병원이 요구하는 항암치료도 받기로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이 내게는 마치 당신은 입원이나 항암치료를 받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몸상태가 어쩔 수 없어 그렇게 했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순간 우상형의 그런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아직도 놓지 못하는 그의 고집과 어리석음에 화가 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화로 제발 좀 형수님이나 가족들 의견에 따르시라고 하고 조만간에 병원으로 찾아뵙겠다고 했다.
그랬는데 며칠 전에 1차 항암치료 후에 후유증 때문인지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중환자실로 옮겨 면회가 어렵겠다는 연락이 왔다. 천하의 장기표의 생이 그렇게 되어서 안 되는 것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우상형은 그럴 수 있다는 게 내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다렸더니 다시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병동으로 옮겼다고 하기에 오늘 면회를 하게된 것이다.
기력이 떨어져 면회가 쉽지 않으리라고 했는데, 고맙고 다행스럽게도 우상형의 얼굴은 혈색이 좋고 기력도 많이 돌아온 것 같았다. 누룽지가 맛도 좋고 좋은 음식이라며 잘 먹고 있다고 했다. 마침 형의 막내 따님 내외가 간병 차 와 있어 우상형이 나를 과장되게 소개하시기도 했는데, 나는 형이 자리를 툴 툴 털고 일어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과 이제부턴 정말로 더 이상 세상 걱정은 놓고 형수님과 가족들의 말대로 따르라고 다시 강조했고 우상형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나는 우상형의 쾌유를 믿는다. 형에겐 그럴 의지와 힘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신외무물(身外無物)이라는 말의 의미가 형에게도, 나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번 생은 이 몸과 함께 하는 것이고 이 몸 없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계도 따로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상 장기표형, 그는 내가 아는 이 시대의 유일한 지사(志士)이다. 여태껏 내가 만난 선배들 가운데 우상형만큼 자신에게 철저하고, 밝고 건강한 세상을 향한 사랑과 열정에 한결 같았던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에 투신한 이래 그는 한 번도 수행자의 길과 사회변혁을 위한 투사의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을 들으면 절로 우상형이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역대 정권에서 권했던 입각 제안과 전국구 의원 직을, 그리고 이른바 민주화 보상법이라는 혜택조차 거부한 이는 형뿐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형은 단지 의만을 추구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의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었다.
그의 정치판의 실패를 두고 무어라고 하는 자들을 보면 나는 현실 정치에서의 실패가 오히려 형을 형답게 한 것이라 다행스럽게 여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양아치들과 범법자들이 후안무치로 설쳐대는 그 진창에서 자금 함께 뒹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누가 우상형에 대한 평전을 쓰면 좋겠다. 형이야말로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자 역사적 자료인 까닭이다. 면회를 하고 와서 우상형의 안부와 함께 두서없는 생각을 이리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