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추모] 서해성 “다른 길로 가버린 선배들을 추모할 때 언어는 스스로 버겁지만”
[아시아엔=서해성 작가] 치열함은 불타는 도끼 같았다. 말은 폭포수로 좌중을 압도했고 글은 사나운 세한바람에 흔들리는 지게문에 방금 바른 창호지 같았다.
옥에 있을 때는 손쉽게 옥방을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재주가 승해서 늘 신발보다 앞서나갔다. 어느 날 살아왔던 세상과 멀어질 때는 미련 없이 매정해서 벌써 병증인 양했다. 직업 정치는 그가 걸어온 길과는 지형도 바람도 판이해서 찢어진 연을 날리려 애쓰는 듯 초라했다.
바라건대 저승 길목에서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로 다시 만나 회포를 푸시라. 1970년 늦가을 청계천 다방 한 구석에 이소선 어머니와 마주 앉은 그날이 가장 아름다웠다.
또 돌아오거든 그 자리에서 만나리라.
장기표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 함께 일하고 함께 싸우고 함께 울다가, 멀어졌다. 부고를 접하니 아득하다. 90년대 초반까지 그를 따라 배웠고, 선배로 앞세우고 싸우던 날들이 가슴 밑에 액체로 고인다.
함께하다 헤어진 뒤에도 선생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도 이따금 밥 먹자고 소식을 전하곤 했다. 세상살이 험해서 그 밥 한 끼를 먹지 못하고 짧은 말로 보내드려야 하다니 못내 안타깝다.
“이 사람이 진짜 싸움꾼이야.”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는 꼭 그 말을 해서 후배를 아꼈다.
까마득한 시절에 호를 하나 지어보라고 해서 민룡民龍이라고 보냈더니 좋아라 하던 모습이 어제인 듯하다. 민룡은 보통 용보다 역린逆鱗이 많아서 기세가 사납다고 덧붙였고, 한 사람이 쓸 호라기보다는 누구나 쓸 수 있는 호가 아니겠냐고 했다. 그 또한 기꺼워했다.
함께 뼈를 섞고 살을 베어넣고 싸우던 선배들이 떠나고 있다. 내내 오던 길을 바꿔 다른 길로 가버린 선배들을 추모할 때 언어는 스스로 버겁다.
장 선배, 후배들을 이끌던 뜨거운 가슴 그대로 가소서. 저승길은 한 길이라니 먼 길에서 돌아와 뜻대로 평안하소서. 말이 말을 겹쳐 덮쳐오건만 더 무슨 말을 하겠는지요.
짧은 글을 소지로 올리나이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