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은혜 받은 증거란?…”진심어린 고백과 삶의 변화”

이사야 1장

‘내가 예배를 드렸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셨는가?’입니다. 드린다고 하나님이 다 받지는 않으십니다. 내가 받은 감격, 내가 받은 감동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이 받으신 것이 없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라는 이름을 빌린 공연이나 쇼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예배를 견디기 힘들어 하셨고, 지겨워 하셨고, 심지어 예배 받기에 지쳤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사 1:11-14)

예배가 마치 그들의 악한 삶에 면죄부를 발급해주는 의식처럼 변질되어 버린 현실에 하나님은 진절머리가 나셨습니다. 오히려 예배 때문에 그들의 위선이 더 깊어졌습니다. 예배 의식에 잘 참여하면 마치 내가 좋은 믿음을 가진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예배조차도 내 위선을 가리기 위한 종교적 장신구와 치장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생활은 자신을 치장하는 또 하나의 장신구일 뿐이었습니다.

신앙은 기도와 찬양과 묵상과 헌금과 십일조와 봉사와 구제와 금식과 주일성수와 교회사역을 장신구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살며 그 악세사리들을 자랑하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장신구를 제하고, 발에서 신을 벗고, 화장을 지우고, 민낯과 알몸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찬양 인도자나 설교자, 기도자가 감동을 자아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은혜는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감동을 받으면 우리는 종교 소비자가 됩니다. 은혜를 받아야 예배자가 됩니다.

내가 받은 것이 은혜인지 그저 감정적 고양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은혜란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깊은 자각과 더불어 하나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하셨다는 진심어린 고백과 삶의 변화가 은혜 받은 증거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나는 그저 예배 콘텐츠 소비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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