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얼만큼 가져야 부자일까?
전도서 5장
스스로를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아니면 자기는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하나금융연구소가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하는 부자 1만명을 10년간 분석한 보고서(2023년)가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상위 1% 중 스스로를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를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이 언제나 부자입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5:10)
인간은 재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물은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만 합니다. 돈은 우리 안에서 주인의 자리를 장악하기까지 만족을 모릅니다. 우리는 부자를 보고 ‘나도 돈이 저만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 지구상에 10억명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눈에는 충분히 풍요로운데 내가 인정을 못하고 만족하지 못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얼만큼 더 가지면 부자가 될까요? 사실 이 질문은 틀렸습니다. ‘얼마를 더 가지지 않아야 부자일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가 아닙니다. 더 이상 가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온 세상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지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초래한 절대 빈곤입니다. 절대 결핍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너무 익숙한 고백이지만 얼마나 위대한 선언인지 모릅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의 근원적인 결핍이 해소되는 경험 속에서 우러나온 노래입니다.
바울에게도 비슷한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아직은 다윗이나 바울처럼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삶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알기에 그곳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 애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