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몰라도 되는 것을 너무 많이 아는 까닭에…
전도서 12장
어떠한 객관적 실재(reality)에 접근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개인 간의 갈등만 하더라도 내막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갈등의 원인을 단순화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측의 주장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고, 동일한 현상과 증거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하물며 국가 간의 외교 문제나 사회적인 이슈, 역사 문제, 이념 갈등, 전쟁 등의 내막은 어떻겠습니까? 동일한 인물, 동일한 현상, 동일한 사건에 대한 상반된 진실을 믿고, 주장하며, 전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각자 나름대로의 치밀한 논리가 있습니다.
3차원에 사는 존재가 실재 그대로를 파악할 수 있는 대상 범위는 2차원까지입니다. 우리는 2차원적 단면만 볼 수 있습니다. 직육면체와 같은 3차원적 존재의 생김새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각 단면의 정보를 머리 속에서 조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추론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몇몇 단면을 조합한 추론의 결과를 진실이라고 믿으며 삽니다. 문제는 각자가 선택하는 단면이 다르고, 단면을 선택하는 취향이 다르고, 선택된 단면을 조합하는 추론 방식 또한 천차만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보가 다양하고 많을수록 진실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기보다는 사람들의 확증편향성이 짙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소란스러운 이유는 학설과 이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온갖 학설과 이론이 난무하기 때문 아닐까요? 인생을 살다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갈팡질팡 하는 것은 답을 몰라서이기보다 몰라도 되는 것을 너무 많이 알기 때문입니다.
인생 잘 살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켜야 할 원칙 몇 가지, 믿을 만한 사람 몇 사람,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몇몇 관계, 경외의 대상 한 분, 이 정도면 충분해 보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의 마지막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그의 인생 결론입니다.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