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가난하면 휘청거리지만, 부유하면 비틀거립니다
열왕기상 13장
여로보암은 자기 왕조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신상을 세웁니다. 따라서 북쪽 백성들은 예루살렘이 아닌 단과 벧엘에서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를 섬겼습니다. 여로보암은 종교적 중심지를 옮기며 절대권력을 휘어잡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벧엘에서 제사의식이 있었습니다. 왕이 직접 집례하는 제사였습니다. 여로보암이 온 백성들 앞에서 근엄과 위용을 뽐내며 제사를 인도하던 중에 사고가 발생합니다. 남유다로부터 온 이름 모를 선지자 하나가 엄숙한 분향 시간에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를 규탄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 즉시 체포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불청객을 체포하라고 명령하던 왕은 자신의 손에 마비증상이 온 것을 확인합니다. 그제서야 왕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선지자에게 손을 고쳐달라고 기도를 간청합니다. 선지자의 기도로 자기 손이 회복된 것을 경험한 왕은 찰나의 순간에 이 무명의 선지자를 북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로 삼아야겠다는 계산이 섰던 것 같습니다. 그를 회유하기 시작합니다.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왕상 13:7)
이에 대한 선지자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왕상 13:8)
우리 인간은 가난 앞에서는 허리가 휘는 고통을 느끼지만, 부유함 앞에서는 자발적으로 허리를 굽신거립니다. 가난하면 휘청거리지만, 부유하면 비틀거립니다. 가난에는 흔들리는 줄 알면서 흔들리고, 부유함에는 흔들리는 줄도 모르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빈곤선(poverty line)은 있는데 왜 wealth line은 없는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무명의 선지자에게는 분명한 선이 있었습니다. 말씀이라는 선입니다. 소명이라는 선입니다. 돈 앞에 장사 없고, 돈 만한 달콤한 유혹도 없다는 말은 삶의 기준선이 불분명한 사람에게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인생이 가난해서 흔들린다면, 그는 부유해도 똑같이 흔들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