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은혜와 사랑 말고 설명할 길이 있을까?”

열왕기상 15장

예전에는 통신사들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약정기간이 남아있는 타통신사 회원에게 전화를 돌려서 위약금을 해결해줄 테니 우리 통신사로 넘어오라고 영업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위약금도 해결되고 사은품까지 제공되면 고객입장에서는 솔깃한 제안이긴 합니다.

유다 왕 아사가 이와 비슷한 수법을 씁니다. 아람 왕 벤하닷과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벤하닷에게 이렇게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왕상 15:19)

벤하닷은 단숨에 바아사와의 약조를 깨고 아사와 새로운 계약을 맺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바아사 왕보다 아사 왕이 제시한 금액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벤하닷은 더 큰 이익이 보장되자 어제까지 내 편이었던 바아사를 한순간에 적으로 돌려세웁니다.

이는 우리 인간이 맺는 관계나 계약의 전형적인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경우입니다. 더 나은 조건이 제시되면 이전 계약은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고, 위약금이 해결되면 언제든지 파기 가능한 것이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의 실상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뭐라도 득이 되는 게 있으니까 관계를 맺고 유지합니다. 금전적인 이득이든, 정서적인 이득이든, 득이 없으면 관계 유지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서는 정치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왕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전혀 다른 차원의 관계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무슨 이유로 인간과 관계를 유지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신이었다면 이런 민족과는 더 이상 관계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관계를 정리하고 다른 민족을 선택해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일이 아닐 텐데, 하나님은 매번 배반하는 민족이 뭐가 좋다고 끝까지 붙들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은혜와 사랑 말고 설명할 길이 있을까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유지되는 것입니다. 내가 손을 놓아도, 하나님은 내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영도 앞바다 <사진 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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