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열왕기하 7장
“나병 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왕하 7:9)
아람 군대의 진영에 도착한 나병 환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곳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밤에 하나님의 개입으로 아람 군대 전체가 퇴진했습니다. 전쟁이 사실상 종료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겼는데 이스라엘은 아직 전쟁 중이었습니다. 아람 군대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전해주는 이가 없었기에 전쟁이 종료되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에게 아직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나병 환자들이 이스라엘 진영에 가서 아람 군대의 후퇴 소식을 알리는 순간, 승리는 이스라엘의 현재가 되고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데 약 8분의 시간이 걸립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태양은 8분 전의 태양입니다. 다시 말하면 8분 전의 태양과 지금의 우리는 같은 시공간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태양의 8분 전 과거와 지구의 현재는 동시(Same time)입니다. 태양의 입장에서는 8분 전 과거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생생한 현재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러르고 있는 하늘은 다양한 시간대가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8분 전의 태양과 8년 전의 시리우스 별이 우리의 현재 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몇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일까요? 단순한 연도의 나열 상으로는 2,000년 전 과거의 사건이지만 누구에게는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입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이기도 합니다.
신학자 오스카 쿨만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시간의 특징은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입니다. 구원은 선형적으로 나열되는 시간 경과를 따라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 나라 사이의 긴장과 역동 속에 십자가 사건이 놓여 있습니다.
A.D 30년 경,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A.D 2024년의 나도 그곳에 동시에 못박혔습니다. 구원은 과거에 박제된 사건일 수 없습니다. 나의 생생한 현실이며 오늘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