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두려움과 경외심의 차이
열왕기하 25장
고대근동을 주름 잡았던 두 강대국이 있었습니다. 애굽과 바벨론입니다. 애굽은 오랜시간 터줏대감과 같은 존재였고, 바벨론은 급부상하는 신흥 세력이었습니다. 이 두 열강 사이에 낀 남유다는 친애굽파와 친바벨론파로 내분됩니다. 남유다에 바벨론의 간섭이 극심해질 무렵, 나라 전체가 친애굽적 성향으로 기울게 되고 바벨론이 두려웠던 남유다는 결국 애굽의 손을 잡습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왕하 25:26)
남유다에게는 착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애굽이 내 편이 되어 줄 것이라는 착시 현상입니다. 그들은 애굽이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애굽이 남유다에 주둔하고 있는 바벨론군을 몰아내주고 남유다의 평화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결론에 다다른 것일까요? 바벨론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바벨론에 대한 두려움이 애굽에 대한 믿음을 키운 것입니다.
두려움은 객관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상황에 쫓겨서 내린 결정, 불안 속에 떨며 내린 결정은 대체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곤 합니다. 배고플 때 장을 보면 모든 음식이 맛있어 보여서 불필요한 식재료를 충동구매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잃으면 인간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면 믿어서는 안되는 것을 믿게 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신 10:17)
두려워해야 할 존재를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경외심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망상이고 불안이며 공포입니다. 사람이 경외심에 사로잡히면 모든 감각이 살아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감각이 마비됩니다. 경외심은 우리로 하여금 강력한 자발성을 띄게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무기력해질 뿐입니다. 경외심은 우리에게 지혜를 선물하지만, 두려움은 겁을 불어넣습니다. 그래서 경외심 속에 담대해지고 두려움 속에 비겁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