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바알과 금송아지의 차이
열왕기하 10장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28-29)
예후는 아합 집안의 심판을 위해 하나님이 세운 사람입니다. 그는 일을 대충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에 철두철미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아합의 씨를 말리는데 혼신을 다했습니다. 특히나 예후는 바알의 흔적을 지우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아합이 바알 숭배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그가 왜 금송아지는 내버려두었을까요? 바알도 우상이고 금송아지도 똑같은 우상인데, 왜 바알은 없애고 금송아지는 없애지 않았을까요? 우리 눈에는 바알이나 금송아지나 그게 그것이지만, 예후에게는 달랐습니다.
단과 벧엘의 금송아지는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남유다에게 민심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남유다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지만 북이스라엘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북이스라엘 왕조의 왕권 확립과 독립을 위한 강력한 종교적 중심지로서 선택된 곳이 단과 벧엘이었습니다. 즉, 금송아지는 북이스라엘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입니다.
예후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따라서 전임자가 섬겼던 바알은 지워야 할 흔적이었지만, 금송아지는 자신의 정통성 주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바알은 없애고 금송아지는 남겨둔 일로부터 우리는 그가 자신이 차지하게 될 왕의 자리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후가 아합 흔적 지우기에 왜 그토록 진심이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아합의 집을 심판했던 것은 좋은 명분이었을 뿐입니다.
바알 신상은 아합을 부인하면 제거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금송아지 신상은 자기를 부인해야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후의 가장 큰 우상은 결국 ‘나’였습니다. 세상에서 내쫓기 가장 어려운 귀신은 자신입니다. 버리기 가장 힘든 것이 자존심입니다. 신앙은 자기 중심성과의 지독한 싸움입니다. 자기 부인의 길입니다. 그래서 좁은 길입니다.
나에게 있어 바알은 무엇이고 금송아지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금송아지를 남겨둔 채 바알 제거에 열심을 내고 있다면 신앙이 좋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연막작전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