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산당’, 우상의 플랫폼
열왕기상 22장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왕상 22:43)
열왕기는 여호사밧의 업적과 한계를 간략히 기록하고 있지만 역대하 20장에는 여호사밧의 이야기가 조금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여호사밧은 왕권을 확립하고 강력한 국방력을 갖추어 나라의 기강을 든든하게 다졌다는 좋은 평가를 받는 왕입니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업적은 유다 전역에서 우상을 제거하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지방에 파송해서 바른 신앙의 길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지 못했던 일이 하나 있었는데 산당을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산당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부터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신을 숭배하기 위해 산 높은 곳에 마련해 둔 공간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제거하는 일은 비교적 쉽습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산당은 ‘굳이 그럴 것까지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산당은 그대로 두고 거기서 하나님을 잘 섬기면 되는 것 아니냐’ 말할 수 있습니다.
산당은 일종의 플랫폼입니다. 역대 이스라엘 왕들은 산당 제거에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복잡하게 얽힌 종교성까지 뿌리뽑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던 것입니다. 우상들을 제거한 산당에 하나님만 갖다놓으면 일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던 플랫폼은 그대로 두고 컨텐츠만 하나님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랬더니 플랫폼에 의해서 컨텐츠가 변형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하나님을 이방신 대하듯 섬기는 풍조가 생겼던 것입니다.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도 우상숭배이지만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도 여전히 샤머니즘 플랫폼이나 유교나 불교의 플랫폼 위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라면, ‘나’라는 플랫폼 자체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