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자녀 양육에 공식이 있을까?
열왕기하 21장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왕하 21:2)
아하스 – 히스기야 – 므낫세로 이어지는 계보를 보면 납득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아하스의 죄악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아들들을 산채로 불에 태워 몰렉에게 제사를 지내는가 하면, 선조들이 힘겹게 없앤 우상들을 복원하는데 열정을 바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인 히스기야는 완전 정반대의 인생을 삽니다. 온갖 우상으로 넘쳐났던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무너졌던 예배를 회복시키고 그동안 중단되었던 유월절을 부활시킵니다.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단 자녀 양육만 빼면 말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들이 므낫세였는데, 므낫세는 아버지의 업적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성전을 다시 수 많은 잡신들의 신상으로 가득 채우고, 자기 아들을 불에 태워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히스기야는 평생을 우상숭배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므낫세는 아버지가 기도의 사람이었는데도 하나님을 버리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던가요? 부전자전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부모가 자식을 겉 낳았지 속 낳았나’라는 말도 있습니다.
자녀 양육에 공식이라도 있으면 참 좋겠는데 부모가 세워놓은 모든 공식을 무너뜨리는 게 자녀라는 존재일까요? 부모 뜻대로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하나님이 자녀를 허락하신 걸까요?
그러고 보면 사울 같은 아버지 밑에도 요나단 같은 자랑스런 아들이 나왔고 다윗 같은 위대한 사람에게도 압살롬 같은 아들이 있었고,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에게도 요엘과 아비야같은 망나니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개떡 같아도 찰떡 같이 크는 아이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을 볼 때 자녀 양육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인가 봅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어쩌면 내가 아이를 기르는 것 같지만, 아이를 통해 하나님이 나를 기르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 덜 된 부모, 인간 만드시려고 아이를 주시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