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감사와 절제

출애굽기 16장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출 16:19-20)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를 내려주지 않으신 날이 없었습니다. 만나를 먹느니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서 노예 음식을 먹는 편이 낫겠다고 사람들이 망언을 일삼았을 때, 그때도 하나님은 만나 공급을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노력과 성과에 따른 보상이 아닙니다. 잘했다고 더 받을 수 있거나 잘못했다고 깎이거나 하는 인센티브가 아닙니다. 누구나 다 똑같이 누릴 수 있는 은혜입니다.

그런 만나에 의외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 치고 너무 빨리 상한다는 것입니다. 하루만 지나면 벌레가 꼬이고 악취가 났습니다. 기왕에 주시는 것, 방부처리를 잘 해서 주셨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금요일에 내리는 만나는 이틀을 둬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증거궤 항아리에 넣어둔 만나는 수십 년이 지나도 끄떡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만나의 유통기한을 늘려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 간단한 일이었을 텐데 하나님은 일부러 만나를 썩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만나의 공급 목적에는 식용 외의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

만나는 은혜인 동시에 시험지였습니다.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았습니다. 약간의 산도(pH)변화에도 색이 변해버리는 리트머스 용지처럼, 만나는 약간의 욕심에도 상태가 변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내면의 보이지 않는 욕심을 체크할 수 있는 측정기로 만나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또 다른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허락하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은혜로 주신 것이지만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부패가 시작됩니다. 우리 삶의 결핍은 은혜가 부족해서일까요? 욕심이 들어가니까 늘 부족감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욕심 부리다가 잃어버린 은혜가 적지 않습니다.

감사와 절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천연 방부제입니다. 은혜는 만나처럼, 햇살처럼, 공기처럼, 내리는 비처럼 모든 이에게 언제나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다만 욕심 부려서 은혜를 상하게 하는 사람과 감사와 절제로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만나를 줍는 이스라엘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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