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명령과 성령, 종교인과 신앙인
출애굽기 22장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경험했던 법률은 무엇이었을까요? 압제와 억압의 법이었습니다. 법의 존재 목적이 파라오의 절대왕권 보장에 초점 맞추어져 있었기에 노예 따위에게는 파라오의 말과 기분이 곧 정의였던 세상을 그들은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처음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출 21:2) 종으로 사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들입니다. 아마도 주인이 종에게 자유를 보장하도록 명시된 이 율법 조항은 충격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출 22:21)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출 22:22) 그들이 살았던 세상에서는 힘 없고 돈 없는 자를 노예 삼아서 부리고 억압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전혀 다른 질서로 움직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파라오가 왕인 세상과 하나님이 왕인 세상의 차이입니다.
이들은 이제 더 이상 파라오의 백성으로 살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준이 다른 율법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이 율법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출 22:21)
‘법률이 정하고 있으니까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아야 한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의식을 요구하셨습니다. ‘나그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그네를 압제해서는 안된다’입니다.
타인을 향한 공감과 존중,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볼 수 있는 선한 동기에 의해 작동되는 법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악법은 법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법률과 율법이 다른 점입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악용의 귀재입니다. 아무리 선한 동기로 만든 법과 제도도 창의적으로 악용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억압하는 세상을 만들어버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인간의 악습을 고치려고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성령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명령을 주셨지만, 신약시대에는 성령을 주셨습니다. 명령만 따르다가 종교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명령만 따라 살면 종교인이 되지만 성령을 따라 살면 신앙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