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일해야만 가치있는 존재, ‘노예’
출애굽기 20장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십계명에 의하면 안식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일만 하던 사람들을 할 일 없는 광야로 불러내셔서 강제 안식을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쉬지 않고 일만 하다가는 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쉼일까요? 일을 중단하는 것이 곧 쉼은 아닙니다. 일이 없어서 괴로운 사람들도 많습니다. 주로 언제 쉬고 싶으십니까? 일이 많을 때가 아니라 일이 기쁘지 않을 때입니다. 왜 일하는지를 모를 때입니다. 따라서 일과 쉼은 반대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일이 쉼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쉬는 것도 일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일과 쉼을 수량화 하는 시대입니다. 법정근로시간, 휴가 일수, 초과근무수당 등과 같은 제도적 지표로 일과 쉼을 정의합니다. 그러한 지표가 거시적 양상의 통계를 산출해는데는 요긴합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잘 쉬고 있는가?’, ‘내가 진정한 만족감을 느끼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나를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십계명 안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 계명의 서술 구조와 유독 비슷한 계명이 있는데, 바로 열 번째 계명입니다.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 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 20:17)
10절과 17절의 구조적 유사성 속에서 두 계명 사이의 연결성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안식과 탐심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쉬지 못하는 이유는 탐욕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일이 아니라 끝 없는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욕심은 나를 닥달할 뿐만 아니라 남까지 닥달해서 쉬지 못하게 만듭니다.
일해야만 가치있는 존재를 노예라고 합니다. 탐욕은 내가 나를 노예 삼고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내가 나를 착취하면서 나를 성취하고 있다는 착시 현상이 바로 탐욕입니다.
이러한 탐욕에 대한 중단 명령으로 하나님은 안식일을 허락셨습니다. 하루 쯤은 손을 놓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안식일 전에 이틀 치 만나를 주신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