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이만수 감독의 ’10+10+10+20=50년’의 꿈

“마지막 20년 프로젝트는 인도차이나반도의 라오스와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으로 가 야구를 전파하고 보급하는 꿈을 가졌다. 이렇게 50년의 꿈을, 10년씩 구체적으로 꿈을 꾸었고 또 그 꿈을 위해 지금까지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나의 인생철학인 “Never ever give up” 정신으로 달려왔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10+10+10+20=50년’의 마지막 꿈 ‘인도차이나반도 야구 전파’를 위해 새해 벽두 베트남에 머물고 있는 이만수 감독.


내 인생, 후회없이 마지막까지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으니 그 시절에도 늦은편이었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경험해보는 야구는 정말 나의 삶에서 새로운 세계였다. 

많은 세월이 흘러 야구를 어떻게 시작했고, 또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는지 내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다. 지금도 이해가 잘 안되는 게 어떻게 14살 중학교 1학년생이 무슨 기대를 갖고 꿈을 키웠을까?

지금 와서 봐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학교 1학년부터 나와의 약속을 정해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하루 4시간만 자고 야구하는 것이었다.

14살 중학생이 대학 졸업 때까지 11년 동안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 4시간만 자고 운동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야구를 시작하다 보니 도저히 따라갈 수 없고 늘 후보선수였다. 선배들 잔심부름 도맡아 하고, 또 일찍 운동장에 나가 돌을 주워야 했다. 당시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를 했기 때문에 인조잔디는 생각도 못했다.

야구를 늦게 시작했기에 다른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따라갈 수 없는 기량이어서 중학 시절에 1년을 유급했다. 그래서 중학교 4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도합 11년 동안 하루 평균 4시간만 자고 야구를 했다.

젊은 시절의 이런 습관 때문에 지금도 하루 평균 6시간 이상 자지 않는다. 늦게 야구를 시작했음에도 야구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의 루틴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부터 남들이 하지 않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새벽에 했다. 내가 야구하던 시절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은 금기였다. 그런데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중1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이렇게 시작했던 웨이트 트레이닝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고 또 자연스럽게 프로 입단과 지도자 생활 때까지 꾸준하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게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하다보니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힘이 좋은 선수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적인 예로 팔씨름 해서 져본 적이 없다.

그리고 두번째는 중학교 2학년부터 ‘야구일지’를 쓰게 되었고, 훈련 마치면 나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다 기록해놓고 혼자서 애써 연구했던 기억이 난다.

세번째는 야구를 처음 해본 내가 어떻게 그때부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는지 정말 신기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개인연습 때 무작정 배트만 휘두르지 않고 가상으로 상대 투수를 생각하며 스윙연습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활애해서 연습했다. 이유는 포수였기 때문이다. 스윙을 한 시간 했으면 똑 같이 포수 연습도 한 시간 했다. 이때도 무작정 스로우잉 연습을 한 것이 아니라 가상으로 주자가 1루에서 2루로 도루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연습했다. 다시 주자가 2루에서 3루로 도루한다는 생각을 갖고 스로우잉 연습을 했다.

스윙할 때 하나를 하더라도 전력으로 스윙했고 또 하나 할 때마다 바깥쪽 들어오는 볼을 대비해 스윙했고, 두번째는 몸쪽으로 들어오는 볼을 예상하고 스윙 연습을 했다. 또 변화구가 들어올 때는 어떻게 스윙해야 할지 한 템포 늦추어서 스윙했던 기억이 난다.

네번째는 새벽 4시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유연체조다. 어린시절이지만 유연체조만 30분 했다. 그때부터 시작하게 된 유연체조를 평생 하게 되었다.

다섯번째는 무조건 한시간 이상 로드웍을 했다. 이 덕분에 아마야구와 프로야구 때 큰 부상이 없었다. 60대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몸의 유연성은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편이다. 선수 시절에는 나만큼 유연한 선수들을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이른 새벽에 로드웍 할 때 발목 다치지 않기 위해 뒤꿈치를 의식적으로 올려서 뛰었다. 발목을 접질어도 큰 부상 당하지 않고 몇번 발목만 돌리면 괜찮아졌다. 유연함 덕분에 큰 부상 없이 야구를 할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습관이 된 ‘일기’와 ‘야구일지’는 평생 써오고 있다.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내 덕분이다. 대학 시절 아내와 만나 말 주변이 없던 내가 아내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규칙적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지금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어린시절 가졌던 좋은 습관으로 인해, 그 작은 습관 하나가 평생 나의 삶을 좌우했다. 어린시절 끊임 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했던 것이 오늘날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것은 부모님께서는 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전국대회에 다 따라 갈 수 있도록 모든 경비를 대주셨다. 야구를 잘하지 못했지만, 당시는 회비만 내면 원정경기에 따라갈 수 있었다.

선배와 형들이 경기할 때면 나는 교복을 입고 스탠드에 올라가 전 경기를 다 집중한 채 노트에 그날의 경기를 기록했다. 그리고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왜 이 상황에서 그런 작전을 내었을까?’ ‘왜 주자가 있을 때 초구부터 과감하게 치지 않았을까?’ ‘선배는 그 당시에 뛰지 않고 멈추어 섰을까?’ ‘왜 이런 상황에 도망가는 피칭을 했을까?’ ‘ 왜 이런 상황에서 변화구를 던지지 않고 직구를 던졌을까?’ 등 이 모든 것들을 스탠드 위에서 기록했다.

많은 세월이 흘러 지금 생각해도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중학생인 이만수를 생각하니 참 대견하다. 어린 나이에 내가 그런 생각을 갖고 야구를 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지 못하다. 그런데 야구만큼은 신기하게 그런 생각을 갖고 체계적으로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의 삶에서 지키면서 지금까지 달려온 또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10년, 10년, 10년, 마지막으로 20년,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고 있다. 처음 10년은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인 중학교 1학년 시절에 10년을 내다보고 꿈을 키웠다. 두번째 10년은 미국에 들어가 10년을 내다보고 미국에서 꿈을 키웠고, 세번째 10년은 한국에 들어와 10년을 내다보고 꿈을 키웠다.

마지막 20년 프로젝트는 인도차이나반도의 라오스와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으로 가 야구를 전파하고 보급하는 꿈을 가졌다. 이렇게 50년의 꿈을, 10년씩 구체적으로 꿈을 꾸었고 또 그 꿈을 위해 지금까지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나의 인생철학인 “Never ever give up” 정신으로 달려왔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신다면 80살까지 인도차이나반도로 내려가 야구를 전파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꿈이다. 이렇게 나의 인생에서 10+10+10+20=50년의 꿈을 갖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에 있다.

내가 생각했던 꿈이 다 이루어지면 그때 나는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더 큰 안식을 얻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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