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 칼럼] 저출산 1위, 그 벽을 넘자
국내 거주 주민등록 인구는 2019년 5185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하락하여 지난해 5144만명으로 전년(2021년)보다 20만명(0.4%) 줄었다. ‘1000만 도시’로 불리던 서울도 2016년 인구 1천만명이 무너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 942만명을 기록했다. 인구수 감소는 저출산 문제에서 비롯됐다.
결혼한 부부가 자녀 두 명을 출산하면 인구수가 유지될 듯하지만 태어난 아기가 모두 성년까지 자라는 것이 아니다. 특히 1세 미만 영아(?兒)사망률이 높다. 이에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대체출산율(replacement-level fertility)을 2.1명으로 잡는다. 즉, 두세 명의 자녀가 바람직하다.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 TFR)이란 임신이 가능한 가임기(15-49세)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를 말한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12년 1.30명에서 지난해 0.78명으로 급락하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한국의 1960-2021년 합계출산율 감소율도 86.4%로 217개 국가·지역 중 가장 심각했다. 전문가들은 초저출생 충격이 곧 한국 사회 전반을 강타할 것으로 우려한다. 실제 내년 초등학교 입학생(2017년생)은 사상 처음으로 40만명을 밑돌 것으로 추산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40만6243명이던 출생아 수는 2017년 35만7771명으로 5만명 가까이 줄었다. 초등학교 입학생은 2004년 65만여명이었는데, 20년 만에 40% 넘게 줄어든 것이다. 올해 신입생을 한 명도 받지 못한 초등학교가 전국에 145곳에 이르며, 전년(114곳)보다 27% 증가했다. 또한 내년에 유치원 입학생도 사상 처음으로 20만명대로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초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자 출산율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2020년 3월 <뉴욕타임스>(NYT)는 “금융 위기 이후 젊은 층이 겪어온 경제난과 코로나19 사태가 뒤섞여 임신과 출산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도 “코로나19가 혼인과 출산 관련 주요 여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19년 OECD 38개 회원국 평균 합계출산율은 1.61명이었다.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에는 1.59명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2021년 출산율은 1.67명으로 반등했다. 미국의 신생아 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줄곧 내림세였다. 2014년 399만명을 기록한 이후 2019년까지 연평균 1~2%씩 감소했다.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에는 전년보다 13만명 줄어 4% 급감했다.
그런데 2021년 상황이 변해 신생아 수는 366만4292명으로 2020년(361만명)보다 5만명 가량 증가했다. 출산율도 1.66명으로 전년보다 0.02명 늘었다. 증가 폭은 0.02명에 불과하지만, 2014년 이후 7년 동안 떨어지다 반등한 것이다. 유럽 주요 국가도 비슷한 추세다. 영국은 2016년(1.79명)부터 매년 떨어져 2020년 1.56명까지 내려왔다가 2021년에는 1.61명으로 소폭 상승했다.
경제적 안정도 출산율 증가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코로나19 유행 직후에는 경기가 침체했지만, 미국 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4조달러(약 52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풀면서 실업율이 3%대로 내려앉았다. 또 주식과 가상화폐가 급등하면서 자산 가치가 상승했다. 독일 매체는 “노동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가운데 월급이 좋고 안정된 직장에서 근무하는 부부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 출산율 반등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20-24세 여성 1000명당 신생아 수는 2020년 94.9명에서 2021년 97.3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35-39세 여성 1000명 당 신생아 수도 51.8명에서 54.2명으로 늘었다. 한스 슈반트 노스웨스턴대학 교수는 “집에서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30대 여성들이 갑자기 아이를 가질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2020년 약 50만명이던 재택근무자 수가 2021년 114만명으로 늘고, 실업률이 떨어지는 등 출산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정도 조성됐다. 하지만 서구와 달리 출산율은 코로나 버프(Buff·일시적 상승)를 받지 못하고 줄곧 하락했다. 외신들은 여러 이유 가운데 한국의 높은 양육비를 주목했다.
전문가들은 양육비 등 돈 드는 곳은 많은데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아 수입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아이 낳는 것 자체에 대해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여성에게 육아와 가사 책임을 돌리는 동아시아의 유교문화로 인하여 서구와는 달리 출산율 반등이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 로스 다우덧(Ross Douthat) 칼럼니스트는 2023년 12월 2일자에서 ‘한국은 소멸하나?(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한국이 현재 출산율을 유지한다면 흑사병이 강타했던 중세 유럽 시기보다 더 큰 폭의 인구 감소를 겪게 될 것”이라며 “한국은 선진국들이 안고 있는 인구 감소 문제에서 대표적인 연구 대상”이라고 했다.
로스 다우덧은 “이런 수준(출산율 0.7명)을 유지하는 국가는 한 세대의 200명 인구(부부 100쌍)가 다음 세대에는 70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라며 “이는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가져온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사망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학계에서는 인구 10명 중 5-6명이 사망한 지역이 적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당시 유럽 인구를 약 8천만명으로 볼 때 사망자는 5천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우덧은 “스티븐 킹의 소설 <스탠드>에 나오는 가상의 수퍼 독감으로 인한 인구 감소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2060년대 후반 한국의 인구가 3500만명 이하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한국 사회는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순 비교에는 무리가 있지만, 한국의 출산율이 그만큼 극단적으로 낮다는 점을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우덧은 한국 초저출생의 가장 큰 문제로 군(軍) 병력 감소를 지적했다. 북한의 현재 합계출산율이 1.8명인데 한국이 0.7명대에서 반등하지 못하면 군 병력에서 큰 차이가 나고 북한의 오판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출산율 1.8명인 북한이 어느 시점에서 남침(南侵)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한국군 병력 정원은 50만명이며, 북한군은 120만명에 달한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5000만명이고 북한은 2300만명 정도이다. 그러나 합계출산율 0.7(한국)과 1.8(북한)을 감안하면 북한이 한국 인구를 추격할 수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드론이나 AI 등은 전체 병력의 10% 정도만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첨단 무기와 장비가 대체할 수 있는 병력에는 한계가 있다.
초저출생은 국방뿐 아니라 의료와 복지 분야에도 큰 타격을 초래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국내 부양비(扶養比)는 38.7(명)이지만, 초저출생이 계속되면 2070년엔 총부양비가 116.8(명)으로 3배 급증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양비(dependency ratio)란 생산연령(15-64세) 인구에 대한 비생산연령 인구의 백분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3757만명이던 생산가능인구는 2027년 3508만명으로 줄고, 2067년에는 절반 수준인 1784만명으로 떨어진다. 경제활동인구가 2033년까지 부산 인구 정도인 300여만명이 빠질 것이며, 이는 내수시장 축소로 이어지고 세금 수입도 감소한다.
생산가능인구가 1% 감소하면 국내총생산(GDP)은 약 0.59% 줄어든다. 이에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2050년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달러 수준으로 추락한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2070년 국민연금 보험료로만 월급의 42%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월소득이 300만원이면 126만원을 내야 한다. 작년 기준 전체 진료비도 1년 만에 9.5%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현재 25조원 정도인 건강보험 적립금이 2028년엔 소진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는 비혼(非婚) 확산과 혼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1인 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1인 가구는 750만2000여 가구로, 전체 가구의 34.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청년층의 결혼 기피와 고령화로 사별(死別) 후 혼자 사는 고령층이 늘면서 2017년부터 1인 가구는 매년 평균 37만 가구 이상 생겨나고 있다. 이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30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0%를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일본은 30여년전 ‘출산율 1.57 쇼크’를 겪은 뒤 끈질기게 인구 감소와 싸웠다. 2005년 출산율 1.26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1.3~1.4명으로 반등했다가 작년에 다시 1.26으로 추락했다. 일본은 출산율 0.78명인 한국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일본 소멸’이란 위기감이 팽배하다. 일본 국민들은 “북한과 인구는 일본의 2대 국난(國難)”(아베 신조 전 총리)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인구 감소 위기감 속에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지난달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으로 연간 3조5천억엔(약 32조원)의 대규모 자금을 쏟아 붓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젊은 층 인구가 급감하는 2030년에 진입하기 전까지 저출산 추세를 반전시켜야 하여,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3자녀 이상 세대를 대상으로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4년제 대학·전문대·고등전문학교(직업학교) 수업료를 전액 면제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자녀가 3명일 경우에 셋째뿐만 아니라, 첫째·둘째의 대학 수업료도 면제한다는 것이다. 국립대학은 물론이고, 수업료가 비싼 사립대학도 면제 대상이다. 수업료 외 입학금도 면제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을 기점으로 인구 감소기에 접어들었으며, 인구 감소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2060년대에 우리나라 인구가 3500만명 정도로 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대한민국 소멸’을 막기 위해 자녀를 가짐으로써 드는 비용을 최대한 줄여 주고, 가족 친화적 사회로의 혁신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 일본보다 더 획기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