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부부’ 사이는 얼마나 멀고 얼마나 가까울까?

강변 부부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독히 싸우는 전쟁터에서 자라났다. 두 분은 본질적으로 가치관이 다른 분이었다. 어머니는 출세한 사람이나 부자를 부러워했다. 평생 가난한 말단 회사원인 아버지를 원망하고 무시했다. 아버지의 침묵 속에는 그런 어머니를 속물로 취급하는 느낌이 들어 있었다.

아침은 어머니의 승리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떤 노골적인 모멸도 돌부처 같이 묵묵히 들으면서 감수했다. 그러다 저녁에 술이 들어가면 광분했다. 온 집안이 부서지고 집기가 날아갔다. 어머니를 심하게 때리기도 했다. 함경도에서 자란 어머니는 물러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악다구니를 하면서 끝까지 덤비다 피를 흘리기도 했다. 나는 두 사람이 왜 결혼했는지 의문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식 사진을 보면서 난해했다.

아버지는 내게 소시민으로 평안하게 살라고 했다. 뜻이 다른 어머니와 사는 아버지는 평안하지 않은 것 같았다. 결혼이 그리고 자식인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묶는 끈이었다면 세월은 그 인연을 끊는 도구였다. 내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때였다. 중환자실의 아버지는 맑은 정신으로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저세상으로 가겠다고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의사들은 당황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옆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영원한 이별을 앞에 놓고 어머니가 아버지 옆으로 주춤주춤 다가왔다. 아버지는 사십년 결혼생활 동안 무섭게 대했는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사실은 사랑했다고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자고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으면서 어머니가 오열하는 걸 봤다. 그리고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건너갔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서 나는 아버지가 거인이었던 걸 깨달았다. 그 모습이 내게는 일생의 교훈이었다.

그 후 나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몇 가지 결심을 했다. 어떤 경우에도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폭력적인 부부싸움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이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아내의 단점까지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내의 말을 들어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부부라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부부라는 것은 애초 출발점부터 ‘타인이 타인이 아니도록’하는 불합리한 관계였다. 그걸 이루려면 맹목적으로 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심지어 이성이나 도덕에 맞지 않는 것도 동조해 줄 각오였다. 나는 부부 사이에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결혼생활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성실이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나도 아버지 운명과 ‘결’과 ‘색’을 같이 하는 느낌이었다. 아내는 현실적이었다. 나는 세상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며 추상이 되어 있을 때가 많았다. 아내는 내가 출세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돈을 많이 벌어 자식에게 잘해주기를 바랐다. 서로의 삶의 기준이 달랐다. 아내는 나라는 그릇이 그렇게 작았는지 모르고 착각했었다고 했다. 나는 원래 그랬다. 아내 눈에 다른 게 씌웠을 것이다. 사랑과 결혼이란 상대방에 대한 그런 오해일 것이다.

나는 속으로 내 주제를 알고 있다. 먼 조상도 벼슬을 한 양반이 아니다. 왕에게 저항하고 산속에 숨어 살던 족속이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주위 친척들도 모두 빈민 출신이다. 나는 그런 배경과 내 주제를 잊지 않고 있다. 나는 아내가 정을 대고 쪼는 대로 만들어지는 그런 조각이 될 수 없는 존재였다. 못나도 나는 나였다. 내 걸음으로 나의 길을 가고 싶었다. 내 나름의 작은 들꽃을 피우고 싶었다. 나는 아내에게 정 나와 뜻을 맞추기 힘들면 이혼을 해도 좋다고 선택권을 주었다. 자식에 대한 의견도 달랐다. 공부를 시키고 결혼을 시켰으면 부모로서의 의무는 다했다. 다음부터는 어떻게 되든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한없이 헌신적인 다른 부모들을 보면서 섭섭해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부라고 해도 때로는 멀리 떨어져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해 바닷가에 와서 묵는다. 그건 내 자신을 다시 발견하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함이기도 하다. 가까이 있으면 진정으로 그리워하고 깊이 생각하는 게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43년이 흘렀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화해의 악수를 하고 헤어져 저세상으로 건너가던 때다. 나도 아버지같이 담담하고 멋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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