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늙으니까 보이는 작은 행복들

늙으니까 이제야 보이는 작은 행복들이 엄청 많다. 통풍이 왔었다.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었다. 한 걸음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중략) 언제까지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몸이었다.

삶에서 성공과 실패를 불문하고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노인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인생의 필름을 과거로 돌려놓으면 겨울 저녁의 하얀 눈밭에 서서 어디로 갈지 몰라 망연해 있는 내가 보일 것만 같다.

늙으니까 이제야 보이는 작은 행복들이 엄청 많다. 통풍이 왔었다.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었다. 한 걸음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가 아프니까 몸 속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들이 들려 왔다. 손목도 아프고 눈도 쓰리고 맥이 빠졌다. 낡은 기계가 된 몸의 나사들이 헐거워지고 붉은 녹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몸이었다. 걷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행복인 줄을 이제야 깨달았다. 한쪽 눈에 녹내장이 왔다. 세상이 좁아지고 흐려 보인다. 다른 눈도 시력이 약해졌다. 이제야 아름다운 꽃들, 봄날 산에 물감같이 번지는 부드러운 연두색의 나뭇잎들, 바람이 강 위에 만들어 내는 미세한 물결들을 볼 수 있다는 게 행복이라는 걸 깨닫는다.

내가 있는 실버타운에서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는 내 또래의 남자를 보았다. 혼자 사는 그는 부자라는 소문이었다. 그런 그가 실버타운의 정원을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산악인이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것 같아 보인다고 할까. 그가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혼자서 걷고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고 얘기하는 아주 사소한 것이 아닐까. 그런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어떤 노인의 죽기 전 마지막 소망은 평소 산책길에 자주 들르던 커피점에서 재즈를 들으며 에스프레소 한잔 마시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주위에 널려있는 그런 작은 행복들을 알았던가. 100점짜리 행복만 찾느라고 그런 것들을 놓친 게 아닐까. 작은 행복을 아는 노인의 지혜를 그때 가지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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