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미운 오리 새끼
한 남자가 군대 있을 때의 얘기를 하는 걸 들었다.
“같이 내무반에서 생활을 하는 데 상급자가 나를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어. 서로 불편하면 힘들잖아? 밑에 있는 나는 더 힘들어지고. 그래서 둘이 있을 때 내가 고개를 숙이고 사정했지. 나의 잘못된 점을 말씀해 주시면 고치려고 노력하겠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뭐라고 하는지 알아? 자기는 그냥 내가 싫대.”
이유도 없이 그냥 거부를 당하는 그 사람은 어떤 느낌일까. 나도 그런 경우를 겪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인터넷 매체를 봤다. 유명인사가 쓴 글의 제목에서 나의 이름을 특정하면서 그 인사가 나를 생각만 해도 역겹고 싫다고 적혀 있었다. 사회비판을 많이 하는 유명인사의 글의 제목으로 뽑혔다. 그 분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비평의 대상이 될 만한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나에 대해 무조건 싫다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아마도 모르는 내게서 그가 역겨워하는 어떤 부류의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걸 알 수 없었다.
남들이 이유 없이 싫어하는 대상이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눈 덮인 해인사의 한 암자에서 공부할 때였다. 나는 한 장학재단에서 주는 학비와 생활비로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런 혜택을 줄 것인가의 심사권을 쥐고 있는 교수는 나같이 가난한 학생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한 번은 그 교수가 불시에 해인사로 내려왔다. 그가 장학금을 주는 학생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고시에 많이 합격해야 그 장학재단이나 학교의 명예가 올라가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몇명의 장학금을 받는 사람들이 교수가 묵는 고급 여관방으로 갔다. 교수는 작은 자개상에 차려진 밥을 먹고 있었다. 몇 명의 장학생들은 그 주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밥상 위에 하얀 밥과 미역국과 명란젓 그리고 계란찜이 보였다. 나는 새벽에 암자에서 주는 밀쌀을 찐 밥을 겨우내내 시래기국에 말아먹었다. 군침이 흘렀다.
밥을 먹으면서 늙은 장학생 서너명을 돌아보는 교수의 눈빛이 사람마다 달랐다. 그중 한 사람에게 교수의 눈빛과 말이 유난히 따뜻했다. 반면에 교수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방구석의 정물을 바라보는 무관심한 눈빛이었다. 안부 한마디 물어주지 않았다. 잠시 후 교수가 여관에서 나와 우리들을 데리고 근처의 다방으로 갈 때였다. 여관 앞에 교수의 반들거리는 포니승용차 안에서 운전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차에 타거라. 같이 가자”
교수가 우리들을 보고 말했다. 나는 무심히 차에 타려고 했다. 그때였다.
“너는 아니지.”
옆에 있던 수염이 더부룩한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늙은 장학생이 내가 차에 타는 걸 말렸다. 머쓱했다. 교수가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교수 옆에 탔다.
차가 떠나자 늙은 장학생이 말했다.
“교수는 애제자만 태우는 거야. 눈치밥을 얻어먹으려면 교수가 싫어하나 좋아하나를 알아채고 행동해야 하는거여. 그렇게 눈치 없이 행동하면 미움받아.”
나는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 몰랐었다.
그 다음 해 나는 장학금을 사양하고 장교로 군에 입대했다. 국가에서 받는 월급이 훨씬 떳떳할 것 같았다. 첫 근무지로 발령이 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또 다시 미운오리새끼가 된 것 같았다. 상관인 장교는 수시로 자기옆에 있으면서 얘기도 하고 저녁이 되면 같이 술을 마시고 놀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사무실 구석방에서 책을 읽었다.
어느날 책을 읽는데 부하인 하사관이 와서 말했다.
“참모님이 입버릇같이 ‘이 개새끼 어디 있어?’라고 하면서 미워해요. 앞으로는 그렇게 미움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요.”
나는 미움을 받고 있었다. 상관이 나를 보는 눈은 미워 죽겠는데 마지못해 참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감정을 녹일 재주를 나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 후 직업 장교생활을 마치고 뒤늦게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을 때였다. 판사생활을 오랫동안 한 연수원장이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고시에 합격하고 법조인 자격을 얻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미움의 대상이 됩니다. 겉으로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취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쇠꼬챙이 같은 걸 품고 미워합니다. 그게 시기나 질투일 수도 있고 여러분이 교만해져서 그런 미움을 자초할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그런 운명인 걸 깨닫고 조심해서 잘들 살아가기 바랍니다.”
통찰이 들어 있는 뼈가 있는 말이었다. 나는 미움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낮은 데로 내려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공감하고 함께 하려고 했다. 사실 나 자체가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고 그런 사람이었다. 내려갈 필요도 없었다. 내가 있는 자리가 사회의 밑바닥이었다. 그런데도 존재 자체로 미움은 파도같이 끝없이 밀려드는 것 같았다.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사건을 변호하면 법대 위 판사들의 눈길에서 은은한 미움이 느껴졌다. 내가 잘난 척 하는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 칼럼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주장하면 또 다른 차디찬 눈길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위선으로 보는 것 같았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해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어떤 통계자료에서 사람들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도 미워하고 싫어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봤다. 그게 인간인 것 같았다. 미움과 비난, 악담에 대해 할 수 있는 대답은 침묵뿐이다.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깊은 강은 돌을 던져도 그 흐름이 변하지 않는다. 악담을 들으면 금세 마음이 동요되는 사람은 물구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숲속의 나무처럼 홀로 적막하고 자족하기를 바란다. 서재와 바닷가는 나의 낙원이다. 여기서 여생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