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두 판사 이야기
20대 후반 나는 서울지역 군사법원에서 판사를 했다. 돌이켜 반성하면 사회의식도 인격도 모자랐다. 남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고 재판 받는 사람들을 존중하지 못했다. 세상 일을 좁디좁은 내 머리를 중심으로 생각했다. 전혀 다른 원리로 움직여지는 세계가 있는 걸 미처 몰랐다. 법정에 노출되는 건 그 사람 인생의 극히 일부였다.
나는 그의 삶을 들어보려고 하는 진지함도 없었다.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는 형을 선고하는 게 나의 의무였다. 나는 판사가 되기에는 실력도 능력도 인성도 없는 무자격자라고 생각했다. 유감스런 얘기지만 세상에는 나 같은 판사도 많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변호사를 흑을 백으로 만드는 직업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있는 죄를 없다고 부인하고 거짓말을 하는 기술자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백지에 점을 하나 찍어 보여주면서 “뭐가 보입니까?”라고 묻곤 했다. 사람들은 “검은 점이 보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변호사인 저는 검은 점보다 훨씬 넓은 흰 면이 보입니다. 검은 점은 그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죄고, 흰 면은 그의 인생입니다. 법정에 그 인생을 보여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검사는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부분을 밝혀 죄의 검은 점을 그려야 하는 직업이다. 판사는 검은 점과 흰 면을 모두 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공정한 판결이 선고될 수 있다고 본다. 논리와 법리로만 보아서도 안된다. 사건은 비논리이고 감정이고 분노고 격정인 경우가 많았다. 당사자의 인생에 경건하게 귀를 기울이면서 그를 이해하는 게 판사에게는 필요하다.
법정에서 두 명의 전혀 다른 성격의 판사를 본 적이 있다.
한 판사는 재판을 받는 피고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법정이라는 어색한 공간과 짧은 시간 속에 할 말을 다 하시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할 말이 있으시면 구치소로 돌아가 글로 써서 재판장인 저에게 제출해 주십시오. 그게 아무리 양이 많아도 제가 다 읽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명판관인 솔로몬은 하나님에게 듣는 귀를 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그가 참 훌륭한 판사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법정에서 본 광경이었다.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재판장이 앉아있는 법대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구치소에서 저의 억울한 사정과 인생을 써 봤습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대해서도 그와 다른 제 의견들을 담았습니다.”
법대 위에는 그가 온갖 정성을 기울인 서류뭉치가 놓여있었다. 판사가 보기 쉽고 찾기 쉽게 색색의 견출지까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재판장이 반갑지 않은 눈길로 그 서류를 바다보고 있었다. 재판장이 이윽고 그 서류 위에 손을 대고 피고인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저 이거 읽지 않겠습니다.” 그 재판장이 왜 굳이 그렇게 말하는지 나는 얼핏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안 읽으면 되는 게 아니었을까. 아마도 결벽증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우수하고 성실한 판사로 이름이 난 사람이었다. 얼마 후 그 판사가 집앞에서 테러를 당해 피를 흘린 채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방송뉴스를 봤다. 이해해 주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 절벽 같은 판사에게 하는 저항인 것 같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법정에 같이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법원이 내 사정을 제대로 살펴볼까? 법원이 힘 센 쪽 말만 들으면 어떻게 하지? 법원이 여론에 좌우돼서 치우친 판결을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들을 한다. 전에는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판사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느냐는 믿음이 있었다. 이제는 사람들의 의식이 달라졌다.
법도 더 이상 판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몇 몇의 미꾸라지 판사들이 사법부에 먼지를 날리고 진흙탕 물을 일으키기도 했다. 법원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된다. 판사가 되려는 사람들은 사회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의 시대다. 이제 법조인들이 살아남으려면 세상에 지식이 아닌 지혜를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