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진짜부자의 기준

변호사를 하면서 많은 돈을 은행에 맡기고 단 일원도 쓰지 않는 영감을 봤다. 은행에서 명절에 선물로 주는 굴비를 받고 그게 크다 작다 따졌다. 돈이 있어도 쓸 줄 모르고 더 가지려고 하면 그는 거지다. 돈이 없어도 쓸 줄 알면 부자라는 생각이다. 돈은 쓴 만큼 자기의 것이 아닐까?

화면 속에서 인터뷰를 하던 교수가 사회자에게 말한다. “저는 빈 시간이 있으면 백지를 꺼내놓고 내가 돈을 무엇에 쓰고 싶은지 하나하나 적어봐요. 여러 사람을 만나봤는데 전부 돈을 벌려고만 하지 그걸로 뭘 할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라구요.”

그의 말이 신선한 느낌으로 가슴에 들어왔다. 돈을 벌려고는 했지만 어떻게 돈을 쓰겠다는 생각은 구체적으로 해보지 않았다. 교수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머리속에 백지를 올려놓고 상상해 보았다. 나는 번 돈을 어디에 쓰려고 했지? 나는 부자인가? 아니면 가난한가? 내게 돈은 무엇이었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기억의 먼 언저리에 있던 고등학교 졸업 후 있었던 반창회 장면이 떠올랐다. 반창회에 가려니 옷이 없었다. 더 이상 교복은 나의 외출복이 아니었다. 동네 친구네 집에 갔더니 벽에 그의 형 양복 윗도리가 있었다. 때가 반질반질하고 손으로 움켜쥐었다 놓은 종이같이 구겨져 있었다.

넝마같은 그 옷을 빌려 입고 시내호텔에서 열린 모임에 갔다. 그 자리에 조끼까지 쓰리피스로 최고급 양복을 맞추어 입은 같은 반 앞에 있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재벌회장의 아들이었다. 그는 나중에 전경련회장이 되기도 한다. 평준화된 교복을 입던 나는 그때 그와 내가 같지 않다는 걸 처음으로 자각했다고 할까. 대학에 입학하고나서였다. 나는 고등학교 때의 구두를 그대로 신고 다녔다. 밑창이 떨어져 걸을 때마다 덜거덕 거렸다.

어느 날 학교 앞 중국음식점 방으로 들어갈 때였다. 방 앞에는 수십개의 구두가 널부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뒷축이 꺾인 새 구두가 보였다. 그 임자에게 새 구두는 소중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학금으로 한달 한달을 살 때였다. 장학금이 나오는 날은 무리를 했다. 같은 처지인 친구와 고기집에 가서 불고기 1인분을 시켜 나누어 먹었다. 상추에 하얀 밥을 얹고 고기한 점과 된장을 묻힌 마늘을 넣어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을 때의 그 맛은 칠십 노인이 된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돈에 목말랐던 시절의 풍경들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 칠십이 넘은 나는 지금 부자라고 생각한다. 빌딩과 주식이 있고 은행에 거액의 현찰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부자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조금 다르다. 친구들이 모일 때 밥을 살 수 있으니까 나는 부자다. 나는 자청해서 가급적 자주 밥을 사려고 한다. 오히려 친구들이 내가 비싼 걸 시킬까봐 메뉴를 빼앗아 가서 싼 걸 시킨다. 부지런히 고기를 구워주고 있는 종업원에게 나는 슬며시 팁을 건네주기도 한다. 남보다 두배쯤 줘도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나는 부자가 맞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요즈음 저녁은 사먹는다. 메뉴를 결정하는 권한은 아내에게 있다. 돈은 내가 낸다. 며칠 전 해안가에 있는 음식점에서 문어숙회와 수육을 먹었다. 계산할 때 보니까 예상보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달빛에 반짝이는 검은 바다 위에 신혼 시절의 한 장면이 홀로그램같이 떠올랐다.

임신한 아내는 갈비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갈비집으로 갔다. 돈이 없었다. 1인분을 시켜 나누어 먹었다. 언젠가는 물리도록 고기를 사줄 수 있는 세월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때가 온 것이다. 나는 아내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이면 그 값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확실히 나는 부자가 됐다.

나의 경제적 능력이 많이 향상됐다. 교회에서 헌금을 할 때도 항상 손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요즈음은 그렇지 않다. 지나가다 노숙자를 볼 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돈을 주기도 한다. 그런 돈을 쓰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 진다. 작은 돈을 쓰고 큰 이익을 본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부자라고 하는 기준은 그런 것들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많은 돈을 은행에 맡기고 단 일원도 쓰지 않는 영감을 봤다. 은행에서 명절에 선물로 주는 굴비를 받고 그게 크다 작다 따졌다. 돈이 있어도 쓸 줄 모르고 더 가지려고 하면 그는 거지다. 돈이 없어도 쓸 줄 알면 부자라는 생각이다. 돈은 쓴 만큼 자기의 것이 아닐까?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재앙이고 고통인 경우를 많이 봤다. 천억대의 큰 빌딩을 가지고 있는 건물주를 봤다. 세들어 있는 업체 수만큼 소송을 벌이는 수도 있다. 그건 지옥에 있는 게 아닐까. 많은 돈을 부둥켜 안고 의심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경계하는 사람도 지옥에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돈을 어디에 사용할 지를 아는 사람이 부자가 아닐까.

 

One comment

  1. 쓴 돈 만큼만 자기 돈이고 나머지는 나라 것 자식 것 입니다. 내가 아는 졸부 당대 재벌은 남을 속여 돈을 벌어서인지 항시 의심하고 남을 안 믿어요.더해서 정신과 약을 먹고 살아요.소송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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