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생기와 오기, 그리고 냉기
오래 전 유럽으로 삼십명 가량이 가는 패키지 관광여행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여행이 중반쯤 됐을 무렵이었다. 그 중의 두 남자가 눈에 거슬렸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단체나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날 일정을 마친 후 두 남자가 호텔 로비의 구석에서 잠시 얘기좀 하자고 했다. 그중 한명이 이런 제의를 했다.
“내가 여행사에 컴플레인을 하겠습니다. 우리 단체가 단결을 해서 어느날 보이코트를 하면 본사에서 자기네 신용도 있고 하니까 다른 해외여행을 공짜로 할 기회를 주고 무마하려고 할 겁니다. 제가 여행을 많이 해 봐서 압니다. 제가 다른 분들은 다 설득해 놨으니까 그렇게 하시죠.”
나는 순간 생각해 보았다. 불평이나 불만은 여행상품의 가격과 비교해 봐야 하는 것이다. 여관 값을 줘놓고 호텔에서 자게 해 달라고 떼를 쓰면 무리인 것이다. 나도 다녀봐서 대충은 알고 있었다. 여행사의 스케쥴은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두 남자는 단체여행객을 선동하려는 것이다.
“글쎄요 저는 여행사에 대해 불만이 없는데요.”
나는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 순간 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들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불쾌한 감정이 드러났다. 다음날 부터 나는 은근한 핍박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 두 명은 내 앞자리에 앉아 크게 떠들면서 나를 자극했다. 불쾌했다. 그는 식사를 할 때 사람들에게 와인을 돌리면서 사람들을 포섭했다. 동시에 그들은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위압적이기도 하고 폭력적인 냄새가 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들 두 명에게 기가 죽어 있었다. 즐거운 여행의 분위기가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함께 가는 여행가이드를 거의 두들겨 패는 수준으로 모멸감을 주고 있었다. 그들 중 한명은 내가 들으라는 듯 사위가 검사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여행 가이드를 막 대하고 잔심부름을 시키고 트집을 잡았다. 그들의 눈빛은 내게 폭력을 쓸 기회를 노리는 것 같았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공짜여행을 한번 할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그들 편에 선 사람중 한명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이상한 분이네요. 이 여행에서 불만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까? 여행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거 아니예요?”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좋지 않았다.
“최고급 호텔에서 자고 최고급 음식을 먹을 정도로 돈을 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자 기준의 문제겠죠.”
“참 이상한 사람이네”
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내뱉었다. 사람들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걸 진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이 옳은가는 추상이나 관념의 세계라고 치부한다. 정치인을 뽑는 투표 같은 것도 움직이는 성향이 비슷했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전에 읽었던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버스에 불량배가 올라탔다. 그는 순간적으로 승객들을 협박해서 버스 안을 장악했다. 아무도 그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기가 죽어 있었다. 그 비슷한 기운도 흐르고 있었다. 그들 두명은 내가 변호사라는 걸 알고 그곳은 한국의 법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치외법권이라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마침내 그들이 정한 디에이의 아침이 왔다. 전원이 여행사가 대기시켜 놓은 관광버스에 탑승을 거부하자는 모의였다. 사람들이 호텔 로비에 모여 서로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중 상당수는 이상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동자인 두 명은 개가 양을 쏘아보듯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됐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혼자 버스로 올라가 탔다.
나의 모습을 보고 주저하던 사람들 중 하나가 따라와 올라탔다. 이어서 사람들이 하나 둘 버스를 탔다. 마지막에 주동자인 그들 두 명만 남았다. 이번에는 동행한 여행가이드가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두 분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본사에서 받은 여행비를 여기서 돌려드리고 알아서 귀국하시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버스는 스케쥴대로 움직였으면 합니다.”
잠시 후 그들 두 명이 헐레벌떡 버스로 달려와 탔다. 완전히 똥을 씹은 표정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한번 맞아볼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불쾌한 여행이 끝났다. 사람들에게서 생기와 오기가 돋아난 것 같았다. 짐을 찾자마자 사람들은 냉기 서린 눈길로 그들을 본체도 하지 않고 갔다.
나는 세상의 축소판을 봤다. 내게 이익인가 아닌가 보다 무엇이 옳은가로 판단하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