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영정사진 속 내 표정은 어떨까?

엊그제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나를 맞이한 그 정신과 의사는 영정 사진틀 안에서 생글생글 나를 보며 웃으면서 덕담이라도 한마디 할 표정이었다. 그는 ‘아침마당’이라는 방송프로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해 세상에 향기를 뿜어내는 말을 하던 분이었다. 그를 애도하는 사람들과 꽃 지게들이 줄 지어 선한 인간의 냄새와 꽃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떠난 뒷자리는 어떨까? 영정사진 속에서 나는 어떤 표정으로 세상을 내다보게 될까(본문 가운데)

며칠 전 장례식장을 갔다. 커다란 안내판에 죽은 사람들의 사진이 올라 있었다. 오래 전에 잠시 만났던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안내판의 얼굴 중 한 사람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아래 적힌 이름을 보니 그가 맞았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죽은 사람의 사진을 볼 때마다 묘한 경험을 받는다. 영정사진에서 죽은 영혼이 가지는 느낌을 전달받는다고나 할까. 살아있을 때 무심히 찍었을 사진에서 죽은 이의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는 게 말이 될까.

암으로 죽은 두 변호사의 장례식장을 간 적이 있었다. 한 변호사는 안내판 속의 영정사진에서 미소를 짓고 웃고 있었다. 저승길을 가면서 어떤 아쉬움이나 회한이 없어 보였다. 또 다른 변호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제단 앞에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놓을 때였다. 영정사진 속에서 그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울먹울먹하고 있었다. 죽은 그의 영혼이 우는 것인지 내 감정이 투사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또 다른 경우도 있었다. 내가 글을 읽고 존경하던 작가가 죽었다. 그의 영전에 꽃 한송이라도 바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아침부터 차를 운전해 오후 늦게 그의 시신이 타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의 영정사진을 마주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나를 외면하는 느낌이었다. 거리가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이라고 할까. 왜 그런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재벌 회장의 장례식장에서 특이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살아있을 때 업무로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 성 같은 집에서 그는 살고 있었다. 넓은 잔디밭 위에 돌로 지은 몇 채의 미끈한 건물이 서 있었다. 회장이 자식들과 같이 살려고 지었다고 했다. 회장은 가정부와 개 한 마리와 외롭게 살고 있었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지어준 집에서 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며칠 동안 그가 준 사건기록을 분석하고 쓴 검토보고서를 그에게 보이고 브리핑을 했다. 그는 다 듣고 난 후 알았으니 가보라고 했다. 이상했다. 남의 땀을 흘리게 했으면 댓가를 지불해야 했다. 큰 돈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들인 시간당의 지식노동의 댓가를 달라고 했다. 그는 잔돈이 없다고 하면서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중에 보내준다는 말도 없었다. 재벌 회장인 그의 태도에서 뻔뻔함과 비굴함을 보았다고 할까. 그래야 부자가 되는 것일까.

사실은 그에게 받을 돈이 또 있었다. 그건 그의 가족을 통해 있었던 일이다. 그가 기억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의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가 떠난 뒷자리의 모습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장례식장에는 그의 회사 직원들로 꽉 차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 누구도 슬프거나 애도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냥 의무로 막대기 같이 그 자리에 꽂혀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회장의 가족의 얼굴에서도 서운함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영전에 향을 하나 피어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사진틀 안에서 그는 여전히 부루퉁한 모습인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마음으로 말했다.

‘잘 가십시오. 당신의 그런 삶이 무엇이었습니까?’

가족이나 사원들은 그래도 장례식장까지는 따라왔다. 그러나 그가 아끼던 돈은 죽는 순간 그를 냉정하게 버렸다. 저승까지 그와 함께 갈 존재가 있을까. 그가 선행을 했다면 그 기억은 아마도 저승까지 따라갔을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내 머리통을 강하게 ‘퍽’하고 치는 것 같았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내 눈에 필터라도 낀 듯 주위가 노랗게 보였다.

‘이게 뭐지?’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몸에서 빠져나온 그의 영혼이 나를 두들겨 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애도하러 오지 않고 따지려고 한 나에게 귀신이 된 그가 응징을 하는 것 같았다. 귀신이 주먹으로 치고 이빨로 물어뜯어도 당하는 사람은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가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던 자리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신비한 체험이 기억에 생생하다.

엊그제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나를 맞이한 그 정신과 의사는 영정 사진틀 안에서 생글생글 나를 보며 웃으면서 덕담이라도 한마디 할 표정이었다. 그는 ‘아침마당’이라는 방송프로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해 세상에 향기를 뿜어내는 말을 하던 분이었다. 그를 애도하는 사람들과 꽃 지게들이 줄 지어 선한 인간의 냄새와 꽃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떠난 뒷자리는 어떨까? 영정사진 속에서 나는 어떤 표정으로 세상을 내다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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