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한 순간 천사를 보았다”
은퇴 후 10년째 ‘야구 불모지’ 라오스·베트남에 야구 보급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돈과 명예를 얻던 현역 시절보다 사비 털어 재능기부하는 요즘이 더 행복하다.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 우승했을 때도 그 기쁨이 1주일 채 가지 않았는데, 어린선수들과 야구를 하니 웃음이 끊이질 않아 행복한 나날이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을 날려 ‘최초의 사나이’로 불린 나는 헐크처럼 거침없고 빈틈없던 포수이자 동시에 최초의 100호, 200호 홈런을 날린 홈런왕 칭호를 받았다. 또 한국 선수 최초로 미국 메이저리그 코치를 맡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88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도 맛보았다.
2014년 10월, 프로야구계를 은퇴하자마자 라오스행 비행기에 오른 나는 야구 전도사로서 또 다른 ‘최초의 역사’를 쓰고 있다. 라오스 최초의 감독이자 야구단 ‘라오J브라더스’ 구단주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포수상’을 만든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이다.어느덧 라오스와 베트남에 야구를 전파한지 10년이 되었다.
SK와이번스 감독직 2년차였던 2013년 10월, 라오스의 제인내 대표가 내게 이메일을 보낸 게 인연의 시작이다. 당시 성적이 안 좋을 때라, 메일을 무시하다 두 달 뒤 전화했다. 제인내 대표 말로는 당시 내 첫마디가 ‘뭘 도와드릴까요?’였다고 한다. 그가 “야구 재능기부를 해달라”고 해 내 딴에는 완곡한 거절의 표현으로 “언제 시간 나면 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순수한’ 그분이 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이후 수시로 전화가 와 처음엔 사비를 털어서 천만원 어치 야구 장비를 사서 보냈고 이후 우리 선수들의 중고 유니폼을 모아 저가 운송비 편으로 라오스로 보냈다. 그러다 2014년 10월, SK와이번스의 감독 재계약 불발 뉴스를 본 그가 “이젠 라오스로 와달라”고 말했을 때 내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땐 정말 ‘나를 약 올리나’ 싶어 너무 화가 났던 기억이 새롭다.
은퇴기념 동유럽 여행 포기하고 라오스로 가다
나를 신앙으로 이끈 아내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고생한 아내를 위해 은퇴기념 깜짝 이벤트로 동유럽 여행을 준비했는데 아내가 “재능기부 약속부터 지키라”는 것이다. SK와이번스 퇴임 3주 만에 라오스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거기서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신약성결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이 아시아로 전도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꿈에서 마케도니아로 가라고 한다. 나도 동유럽으로 가려 했는데 하나님이 라오스로 가라고 하신 것 같았다. 하나님은 이미 루디아라는 여인을 예비했듯 나 역시 제인내 대표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세팅해 놓았던 것이다.
처음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할 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었다. 2014년 11월, 난생 처음 라오스에 도착해 정말 깜짝 놀랐다. 당시 라오스 경제력이 세계 139위로 우리나라 1960년대 초반 모습이었다. 선수들 상황도 열악했다. 겨우 12명인 선수는 죽도 못 얻어먹은 듯 엄청 여위어 있었고 그중 5명이 맨발로 왔다. 꿈이 뭐냐고 물으니 하루 세끼 밥 먹는 거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선수 모집광고에 빵과 물을 지급한다고 했더니 300명 정도가 지원했다. 최종 40명을 뽑았는데 그들이 라오스 유일의 야구단 라오J브라더스의 선수였고 동시에 라오스 최초의 국가대표였다. 방문 첫해 뎅기열에 걸려 기분 나쁜 미열이 한 달 넘게 지속됐던 기억도 생생하다.
음악이 삶을 바꾼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처럼 야구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구나, 그걸 알게 되었다. 선수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주고 싶어 부산국제교류재단 지원으로 2016년에 처음으로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을 한국에 초청했다. 그랬더니 하루 세끼 밥 먹는 게 꿈이라던 선수들이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라오스의 문맹률을 낮출 교사부터 정치경제 변화를 이끌 정치인, 사업가 그리고 병원이 없어 아프면 태국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며 의사를 꿈꾼 친구도 있다. 물론 야구선수도 꿈꿨다. 초창기 40명이던 선수는 이제 150명으로 늘었는데, 야구단을 거쳐 간 친구까지 합치면 200명에 이른다.
야구장 건립은 한국을 다녀간 선수들에게 국제야구대회 출전과 같은 또 다른 동기부여였다. 라오스 야구협회 설립을 추진하다 일이 야구장 건립으로 이어졌다. 라오스가 사회주의 국가여서 외부인을 경계하다 보니 야구협회 설립에 3년이 걸렸다. 정부 관계자 미팅에서 그들이 대접한 지네, 박쥐 요리까지 먹으며 설득했다.
마침내 라오스 정부가 부지를 줄 테니 야구장은 알아서 지으라고 해 대구은행 회장님의 기부금 3억에 헐크파운데이션 재단에서 절반을 보태 야구장 건립비용을 마련했다. 어떻게 보면 베푸는 삶을 모르다가 라오스에 가서 억지로 내손에 움켜쥐고 있던 돈을 내놓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재물, 명예, 건강이 다 날라 가나 싶었는데 뒤돌아보니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나를 헐벗게 하지 않으셨다. 나는 진짜 행복을 선사받은 것이다.
아내와 두 아들·며느리·손자의 응원이 큰 힘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아내는 내 첫사랑이다. 3년간이나 나를 전도해도 꿈쩍하지 않자 헤어지자고 했다. 대학 1학년 시절 아내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결혼할 생각이던 나로선 화들짝 놀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삼성라이온즈 창단 멤버가 됐는데, 야구도 열심히 했지만 한창 신앙으로 뜨거울 때였다. 젊은 혈기의 베드로처럼 지혜롭지 못하게 다짜고짜 전도하다 선배에게 따귀를 맞기도 했다.
흔히 우리는 성공하고 돈 많이 벌면 하나님께 축복 받고 은혜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프고 실패하고 좌절하면 저주받은 걸까? 아니다. 복 받기 위해 교회 가는 게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나는 라오스에서 천사를 봤다.
솔직히 라오스에 첫발을 내딛을 때만 해도 흑심이 있었다. 폼 나게 재능기부하고 그걸 발판 삼아 다시 프로야구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쯤 되는 어린 선수가 나를 안으면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안길 때 한 순간 천사를 보았다. 그때 다 내려놓고, 남은 인생을 야구 재능기부에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구약성경 에스더 4장에서 에스더는 자기 민족 유대인을 살리기 위해 왕 앞에서 은혜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고 한다. 나 역시 야구선수로서 인기를 얻은 것은 재능기부를 위해 하나님이 세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두 아들이 ‘왜 사서 고생하시느냐’고 안타까워 한다. 아내도 내가 당뇨가 있어 음식을 조심해야 하니까 “좋은 일도 건강해야 하지 않냐”고 걱정한다. 그들의 응원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 야구 재능기부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자 명령이어서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습관이 무섭다. 나는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하루 4시간밖에 안 잤고, 지금도 하루 6시간 이상을 안 잔다. 라오스, 베트남 가서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일을 본다.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자 나의 남은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일이다.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바로 지난 10년이다. 현역시절 우승해 얻은 기쁨은 길어야 1주일인데, 은퇴 후 다 내려놓고 애들과 야구하니까 웃음밖에 없다. 40도 불볕더위에서 다 퍼진 라면을 나눠먹으며 야구하는 게 무엇보다 행복하다. 현역시절 스트레스성 위장병도 사라졌다.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66세다. 인생 마지막 20년 프로젝트가 있다. 라오스, 베트남에 이어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다섯 나라에 야구를 보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