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 앤디처럼”

이만수 감독의 에이전트이자 친구인 앤디 김(왼쪽)

지난 9월 7일 새벽 6시 멀리 미국 애틀란타에 살고 있는 앤디 친구로부터 사진이 몇장 카톡으로 왔다. 2006년 매년 한번씩 열리는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인 인터리그 경기 때 사진이다. 당시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팀과의 원정경기에서 앤디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앤디는 삼성 라이온즈 시절 정동진 감독님 소개로 알고 지내던 친구다. 삼성 라이온즈 선수 시절부터 늘 연락하고 지내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정말 멋진 친구다.

앤디는 어린 시절 부모님 따라 미국으로 갔다. 한국에 있는 세월보다 미국에서 생활했던 시간이 더 길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국이 그리워 한국을 잊지 못하는 친구다.

이만수 감독의 에이전트이자 친구인 앤디 김(왼쪽)

친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니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내가 삼성에서 방출된 후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 떠났을 때 모든 일을 옆에서 자기 일처럼 돌보아 주었다. 1998년 홀로 미국에 갔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암담하고 막막하다. 아직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때는 모든 것이 다 두려웠다. 홀로 미국에 있을 때는 외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날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 친구인 앤디가 멀리 시카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플로리다 숙소까지 찾아왔다. 앤디는 그런 친구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우리들의 우정은 변함이 없다. 외롭고 힘든 생활을 보내다 나는 2006년 10월말 SK와이번스 팀으로부터 수석코치 제의를 받아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앤디는 내가 미국에서 처음 지도자생활을 할 때부터 나의 친구이자 나의 에이전트였다. 든든한 친구가 있는 것만 해도 안심이 되고 행복했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앤디가 언제까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부터나는 혼자 모든 것을 개척하며 살아가야 했다.

홀로 미국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매일 땀으로 범벅된 유니폼을 빨아야 하는데 마침 내가 있던 숙소 옆에 코인 론드리가 있는데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랐을 때다. 한참 서성이고 있으니깐 함께 살던 미국인 주민이 25센트 코인 두개를 주더니 작동법을 가르쳐 주었다.

야구하고부터 유니폼을 한번도 빨아 본적이 없어 어떻게 유니폼을 세탁하는지 몰랐다. 어린 선수시절에는 어머님이 빨아 주셨고 결혼하고부터는 아내가 빨아 주었다.

SK가 미국 플로리다 베로비치로 스프링캠프를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앤디 친구는 애틀란타에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친구는 몇년에 한번씩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잠시 짬을 내 한국을 방문한다. 앤디 친구는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메일과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그가 지난 7일 새벽에 보내준 사진을 보니 어느새 50대에서 6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우리 둘다 흰머리가 희끗희끗 많이 났다. 지금도 친구를 생각하면 여전히 어른이 아닌 젊은 선수시절이 떠오른다. 타임머신 타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멋진 친구와의 아름다운 추억, 오래오래 간직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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