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렌즈 판소리] ‘백골징포’…판소리를 ‘노래’ 대신 ‘소리’라고 하는 까닭

경주 남산의 굽은 천년송 <사진 배일동 명창>

단원의 그림이 그런 것처럼 판소리도 마찬가지였다. ‘흥부가’는 형제간의 우애를 다뤘다고 하지만, 자세히 곱씹어보면 작가의 의도는 정작 딴 데 있다. 놀부와 흥부를 내세워 조선 후기의 대지주와 소작인의 부조리한 단면을 고발한 작품이다.

당시 일반 백성 중에는 농지를 가진 자가 없었고, 농지를 가진 자는 모두 부유한 상인과 양반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소작을 주어 부를 축적했는데, 그 과정에서 온갖 부정을 저지르며 가난한 민초들만 괴롭혔다.

못된 지주세력은 바로 놀부요, 가난한 흥부는 민초로 대역한 것이다. 민초들은 지주들의 핍박을 못 이겨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 그마저도 힘들 때는 흥부처럼 매품을 팔았다고 한다. 판소리는 민초들의 이런 질곡된 삶과 설움을 소리꾼의 통성을 통해 피가 터지도록 천하에 내질렀다.

당시 처참한 민초들의 삶을 그린 다산의 시 ‘암행어사가 되어 적성촌을 돌아보고’를 읽어보자. 

시냇가에 뚝배기처럼 찌그러진 집이 있어
북풍에 이엉 걷히고 서까래만 앙상해라.
묵은 재 위에 눈까지 덮여 부엌은 싸늘하고
체 눈처럼 뚫린 벽으론 별빛마저 스며드네.
집 안에 있는 거라야 너무나 썰렁해서
모조리 판대도 일여덟 푼 안 되겠네.
삽살개 꼬리 같은 조 이삭 세 줄기에다
닭 염통 같은 고추 한 꿰미,
깨진 항아리 새는 곳은 헝겊으로 때운 데다
내려앉은 시렁일랑 새끼줄로 얽었어라.
구리 수저 오래전에 이장에게 빼앗겼는데,
이번엔 옆집 부자가 무쇠솥을 빼앗아갔네.
닳아빠진 무명 이불 겨우 한 채뿐이라서
부부유별 따지는 것도 이 집엔 안 어울려라.
어린놈 해진 옷은 어깨 팔뚝 다 나왔고
날 때부터 바지 버선은 걸쳐보지도 못했다네.
큰놈은 다섯 살 때부터 기병으로 올랐고
세 살 난 작은놈도 군적(軍籍)에 들어 있어,
두 아들 군포(軍布)로 오백 푼을 물고 나니
빨리 죽기나 바랄 뿐이지 옷을 따져 무엇하랴.

허경진 엮음, <다산 정약용 시선>, 평민사, 50~53쪽

지금 보아도 통분할 내용이다. 영락없이 흥부를 그려놓은 듯 처참한 당시 민초들의 모습을 다산은 시에 그대로 담아냈다. 그 유명한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의 잔학무도한 위정자들의 횡포를 시로써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백골징포란 말은 관료들이 사복(私腹)을 채우기 위해 이미 죽은 사람을 살아 있는 것처럼 조작해서 군적(軍籍)과 세부(稅簿)에 올리고 세금을 뜯어가던 일을 말한다. 황구첨정이란 당시 국법에 14세 이하의 소년은 군적에 등록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기까지 군적에 등록시켜 강제로 세미(稅米)를 뜯어간 것을 말한다.

지금 사람들은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얼토당토않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다산의 시에서도 보았듯이 실제로 생생하게 벌어졌던 일들이다.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나는 것도 당시 폭정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도망가 화전을 일구고 살았던 민초들의 실제 모습이다.

그런 상황도 다산은 시에서 읊기를, “꼭대기를 올려다보니 밭 태우는 불길들 호적에 들지 않은 백성이 바로 이들이어라” 하며 통탄했다. 쫓겨난 흥부는 오갈 데가 없어 화전을 일구고 사는 것도 모자라 매품팔이까지 나서지만 그것마저도 남한테 빼앗긴다. 환자쌀도 구하기 힘들어 놀부에게 가서 돈이나 쌀, 보리나 싸라기든 무엇이든 주면 좋겠다고 간청하지만, 오히려 실컷 두들겨 맞고 돌아온다. 그런 흥부의 서러운 맘을 위로하기 위해 작가는 흥부에게 박통 속의 금은보화로 보상해주고, 놀부는 박통 속의 온갖 몹쓸 것으로 패가망신케 한다.

하지만 흥부는 그렇게 설움을 당하고 살았어도, 망한 놀부를 모른 체하지 않고 자기 재산을 나누어 살자고 한다. 이는 부정부패를 일삼는 지주층과 관료들의 실상을 낱낱히 파헤쳐 그들의 잔악한 처세를 세상에 알려 부정함을 호되게 질타하고, 더 나아가 다 함께 잘 사는 이상 세계를 만들자고 흥부에 입을 빌려 외친 것이다.

판소리를 노래라 하지 않고 소리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원통하고 분한 사정을 털어놓는 데 한가한 음률로써는 감당이 안 되니 판소리로 멍울진 마음을 달래고 어르고 삭여냈던 것이다. 흥부가 형수한테 뺨을 맞았는데 어찌 한가하게 노래가 나오겠는가?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하늘에 계신 조물주가 제발 들어주십사 통곡으로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판소리에 꼭 그런 설움과 통한의 정서만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의도는 흥부와 놀부 두 형제 사이에 우애라는 그물을 쳐놓고, 그 너머에 있는 민초들의 설움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소리꾼은 이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읽어내야 성음을 제대로 낼 수 있다. 그 숨은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 긴 사설 여기저기에 해학이나 골계와 비유나 풍자 같은 그물들을 촘촘하게 쳐놓은 것이다. 판소리의 성음들을 한번 곰곰이 들어보라. 왜 판소리는 그렇게 걸걸한 쉰 목으로 토해내듯 쏟아내는 발성을 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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