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소리 집중⑦] 수련 끝에 목이 활짝 트이다
“치곡(致曲)과 불식(不息)의 공이 득음의 명약”
바위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내 목이 트이면서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바위가 떨어진 게 조짐이었는지도 모른다. 눈이 포근하게 내리던 어느 겨울날 오후 점심을 먹은 뒤 천천히 목을 풀고 기운을 써가며 소리를 해나가는데, 갑자기 뻑뻑한 목청이 툭 트이면서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듯 거침없는 소리가 통성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어서 긴가민가하며 어리둥절했으나, 몇 번이고 소리를 질러봐도 여태까지의 느낌과는 분명히 달랐다. 마치 아랫배 단전은 단단한데 머리는 있는 듯 없는 듯 거침이 없어 소리를 지르는 대로 시원스레 허공으로 뻗어나갔다. 상중하 단전이 서로 소통하여 기맥이 하나로 연결된 것이었다. 돈오(頓悟)라고 하더니 정성스러운 점수(漸修)로 인하여 목이 단박에 터져버린 것이다.
오랜 적공 끝에 간신히 오르고 또 올라, 그즈음이 산 정상을 바로 눈앞에 둔 지점이었던가 마지막 안간힘으로 정상을 디딘 순간 천지 사방이 툭 틔어 걸릴 게 없는 통쾌한 대자유의 경계를 본 것이다. 대기만성이라더니, 이 순간을 맛보려고 얼마나 모질게 공부했던가. 이제는 거칠 게 없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를 멈추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울다가, 천지 사방의 제신(諸神)들을 향해 수없이 감사의 경배를 올렸다. 물론 목을 얻었다고 해서 소리의 재능까지 얻은 것은 아니다. 목은 틔었어도 음악적 재능은 한참 모자라니 득음의 경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척도 분간하기 어려운 갑갑한 오리무중의 시기에 하늘에서 사다리를 내려준 것이나 마찬가지니, 이젠 그 사다리만 잡고 착실히 오르면 되었다.
“이제부터는 실천이다!” 깨달은 바를 잡고 더욱 정밀하게 닦아 완전의 세계로 착실히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해도 해도 좀처럼 풀리지 않아 갑갑하고 전후 분별을 못 하던 때와는 경우가 판연히 다르다는 것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목이 트인 경험을 한 뒤에는 공부가 재미있고 신났다. 온종일 내질러도 피곤한 줄 모르고 상하청을 내는 데 걸림이 없으니 마음이 편했다. 그야말로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
공부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갑갑하던 경계가 갑자기 화통하게 트이니 말이다. 이러한 경험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십수 년을 적공한 끝에 한순간 툭 터져버린 깨달음의 경지였다. 이런 활연한 깨달음이 없는 예술의 경지는 그냥 평범하다. 깨달음은 평범과 비범의 경계에서 생겨난다.
단박에 트임은 그저 우연히 오는 행운이 아니라 수많은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조선 후기 문인이었던 김택영은 <수윤당기>(漱潤堂記)에서 “문장이라는 것은 부지런함으로 말미암아 정밀해지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렇다. 예술이나 학문은 모두 부지런히 정진해야 깨달음의 경지가 도래하지, 아무런 공도 들이지 않았는데 그냥 다가오는 법이 없다. 깨달음이란 재능을 타고난 것 하고는 별개이다. 재주의 유무를 떠나 오로지 쉼 없는 정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영광된 일이다. 바로 전까지도 깜깜했던 이치가 금세 훤해지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기는커녕 그 하나도 주체할 수 없던 것이, 툭 깨달음이 터진 이후로는 어찌 된 일인지 낱개로 흩어졌던 구슬들이 하나로 꿰어지듯 단박에 정리되어 분별과 경계가 다 부질없는 일이 된다. 엄격했던 예술 법도도 소용이 없다. 소리를 내놓는 것 자체가 신이 나서 성음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이러한 깨달음의 느낌은 나만 알 뿐, 말이나 글로 보여줄 수 없는 경지다. 이러한 깨달음은 체험으로 얻는 직관적인 영각(靈覺)이다. 이처럼 영묘한 영각도 모두 사람의 부지런함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니, 깨달음으로 가고자 한다면 정진의 공(功)을 다해야한다.
나의 스승이신 성우향 명창도 보성의 정응민 선생 문하에서 소리 공부할 때는 밤을 새운 적이 수도 없다 하셨다. 그렇게 미치도록 소리에 푹 빠져 살아야 심금을 울리는 통성이 쏟아져 나온다.
얄팍한 재주만 믿고 요령 부리고 나태하게 소리를 하면 스스로도 부끄럽고 부족한 소리만 나온다. 한 방울의 빗물이 모여 큰물을 이루고, 마침내 천길만길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처럼 되려면 그 한 방울의 공도 허투루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깨달음의 이치다. 치곡(致曲)과 불식(不息)의 공이 득음의 명약이다.